[세계포럼] ‘이재명 리스크’와 민주당의 선택

박창억 2022. 11. 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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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 입 열며 李 사면초가 신세
자신이 책임지려는 자세 필요
개인 비리를 黨의 위기로 키워
민주당 진로 심각히 고민해야

과거에도 측근이 등을 돌려 거물급 정치인이 발목을 잡힌 적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는 ‘영원한 비서관’으로 불렸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입을 열면서 급물살을 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도 육사 후배이자 하나회 회원인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진술이 수천억원 비자금의 실체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입을 열며 대장동 사업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시작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대장동 사업을 주도했던 남욱 변호사(천하동인 4호 소유주)에 따르면 유동규는 자신을 스스로 이재명의 ‘넘버 3’라고 했던 인물이다. 이재명은 “불법 정치자금은커녕 사탕 한 개도 받은 적 없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제기됐던 ‘이재명 리스크’는 이제 현실이 됐다.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던 이들도 이제는 이재명의 도덕성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박창억 논설위원
유동규의 발언은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거액을 전달했다는 수사 내용과 관련해 “이재명이 이를 알았느냐”는 질문에 “모를 리가 있겠느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이재명 명령으로 한 건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규가 입을 열며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은 이재명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정국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이뿐 아니다. 김용은 구속됐고, 이재명의 또 다른 최측근인 정진상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김용과 정진상은 이재명이 자신의 입으로 “측근이라면 정진상·김용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고 했던 인물들이다. 김용과 정진상, 유동규는 성남 ‘이너 서클’의 핵심으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이재명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형국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재명과 김용은 검찰의 날조극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의 주장은 유동규 한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한 게 아니다. 최근 남욱의 측근이 돈을 건넸다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차량 출입 기록까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사람이 구속되고 출국금지 조치를 당한 데 대해 합당한 설명을 하고 책임질 게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2002년 대선 이후 측근 비리나 대선자금 문제가 터졌을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모두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결기를 보여줬다.

이재명이 대응 카드로 제시한 특검도 여론 지지를 얻기 어렵다. 검찰이 권력 눈치를 보며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때 동원하는 게 특검인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이재명은 대선 정국에서 “특검 하자는 사람이 범인이다” “특검 수사를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 적폐 세력의 수법”이라고 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재명의 정치생명이 풍전등화 신세가 됐지만, 더 큰 문제는 이재명과 한몸이 되기를 자처한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든 당력을 쏟아붓고 있다. 마치 ‘이재명 리스크’를 떠안고 불에 뛰어든 형국이다. 민주당은 뭉쳐서 싸우면 사건을 무마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민주연구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물리적으로 막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새해 예산안 국회 시정 연설도 전면 보이콧한 게 그 예다.

당원에게 정치적·도덕적 문제가 있으면 당 차원에서 징계하는 게 공당의 자세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야당 탄압, 정치 공작 운운하며 이 대표 개인의 범죄행위를 당의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민주당은 이 대표와 함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은 지금 위험 부담이 너무 큰 모험을 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재명 리스크’를 떠안고 가는 게 당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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