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숫자 3의 역설과 전략기술 그리고 대학

2022. 11. 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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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연구 중심 대학의 역할
기술사업화 기능 더해 점차 확대
3분화된 지원 체계 1개로 통합
인재 다양화… 전략기술 힘써야

숫자 ‘3’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하다. 여름철 더위도 초복·중복·말복의 ‘삼복’으로 나누며, 아이를 점지해주는 것도 ‘삼신할매’이다. 예로부터 ‘삼족오’라는 세 발 달린 까마귀를 신성시하였으며 일상생활 중 ‘삼세번’이란 말을 하루 세끼 먹는 밥처럼 자주 사용한다. 숫자 3에 대한 선호는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나 힌두교의 삼신(브라흐마·비슈누·시바)처럼 숫자 3이 완결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대학에 기대하는 역할도 숫자 3과 관련이 있다. 근대적 대학의 시초는 1088년 이탈리아 볼로냐에 설립된 볼로냐대학교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학교’(Universitas)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곳이다. 이후 1096년 영국 옥스퍼드대, 1209년 케임브리지대가 설립되면서 근대 대학의 형태가 정립되었다. 지금처럼 강의를 통해 지식을 전달한다는 점은 근대와 현대가 동일하지만, 그 외의 대학의 역할에는 차이가 있다. 당시 볼로냐대 같은 근대 대학의 주요 기능은 교육에 국한되었으며 가르치는 과목도 신학과 문학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거치며 근대 과학이 태동하고 발전하면서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도 증가했으며, 대학이 연구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후 한동안 교육과 연구는 대학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부상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대학이 연구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지식의 활용, 즉 기술사업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1980년 바이돌 법을 제정하면서 대학이 연방정부 지원을 통해 창출된 지식재산권을 적극적으로 사업화하도록 장려한 바 있다. 이후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사업화로 체계화하는데, 대학이 지식의 생산(연구)과 전달(교육) 그리고 확산(사업화)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 기능을 고루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지식과 관련된 전 주기에서 역할을 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
이처럼 대학의 기능은 역사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이는 국가적 이슈에 대학의 역할 또한 점점 커지는 것을 뜻한다. 지난 주 정부가 발표한 12대 국가전략기술이 좋은 예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경제와 산업, 더 나아가 국가 간 동맹과 외교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면서, 대학이 경제안보와 전략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전략기술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주문받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숫자 3의 역설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3분화된 지원 체계를 1개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한다. 현 정책 지원 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부가 교육 관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구 관점에서,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사업화 관점에서 대학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세 가지 주문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전략기술처럼 중요한 국익과 연결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결이 다른 정책으로 대학 현장에 혼선을 주면 안 된다. 사전에 조율된 정책을 통해 대학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둘째, 세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를 잘하는 여러 교수가 필요하다. 대학이 세 가지 다른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모든 교수가 올라운드 플레이어처럼 세 가지를 다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 연구, 기술사업화 하나에 특화된 교수들이 대학에서 제대로 평가받도록 인사 평가 제도를 혁신함으로써 인재 육성과 기술사업화가 제대로 추진되게 할 필요가 있다.

셋째, 3분화된 인적 구성을 다변화해야 한다. 현재 대학에는 법적으로 교수와 직원과 학생만 존재한다. 전략기술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문 테크니션도 필요하고 다양한 전문연구원도 필요하다. 전략기술 개발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세분화·전문화한 다양한 인력이 대학에서 활동하고 또 길러지도록 경직된 인적 구성을 유연화해야 한다.

출사표는 던져졌다. 이제 대학 혁신을 통해 전략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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