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핼러윈 치안대책 보고서’에 ‘압사 우려’는 한 글자도 없었다
경찰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앞두고 수립한 치안대책에 ‘압사 우려’를 다룬 대목이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참사 대책을 수립한 서울 용산경찰서나 지휘·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경찰청 모두 ‘인파 밀집형 사고’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다. 경찰은 운집한 시민 안전보다 공연음란, 교통 무질서 등 범죄 예방에 주안점을 두고 행사에 대비했다.
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청은 ‘핼러윈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 문건에서 “폭행, 주취 난동 등 무질서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방송, 시민 불안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중 밀집 장소에서 강제추행, 치기절도 등 강력범죄와 과다노출, 모의총포 소지와 같은 위법행위 발생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용산서가 작성한 ‘2022년 이태원 핼러윈 치안상황 분석과 종합치안 대책 보고’ 문건에도 압사 사고에 대비하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12신고 건수를 분석한 결과 핼러윈 주말 이태원파출소에 접수된 신고가 10월 평균보다 2배 이상 급증했고,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클럽 등 유흥업소 운영 재개로 더 많은 인파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을 뿐이다.
용산서는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사고 발생 가능성 대신 범죄예방에 집중했다. 용산서는 서울청과 마찬가지로 강제추행, 절도, 과다노출, 모의총포 소지와 같은 위법행위가 특히 우려된다고 했다. 또 이런 무질서한 상황이 유튜브 등 개인방송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교통정체와 교통사고 가능성도 보고했다. 그러나 압사 사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인력 배치 역시 범죄예방에 집중됐다. 형사과 16명과 생활안전과 8명이 배치됐으나 이들은 마약 단속, 불법 모의총포 소지, 과다노출 검거 역할을 맡았다. 교통과 26명은 녹사평, 이태원, 해방촌 등 3개 로터리에서 무단횡단과 불법 주정차 단속에 배치됐다. 외사과 6명과 여성청소년과 3명은 외국인 범죄와 성범죄를 단속했다. 현장에서 보행자의 흐름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은 경찰관은 1명도 없었다.
책임론이 불거지자 용산서는 지난달 26일 용산구청, 상인연합회와 간담회를 열고 다중 운집 질서유지 등에 대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해명했다. 또 일부 상인들이 과도한 경찰력이 배치되면 핼러윈 분위기가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며 경찰력을 추가 배치하지 않은 것은 상인들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용산서가 의원실에 제출한 간담회 내용을 보면 이 자리에서 압사 사고와 관련한 논의는 없었다. 경찰이 상인연합회에 요구한 것은 마약, 불법촬영, 성범죄 등 예방 단속활동에 적극 협조하라는 것이었다. 질서유지에 대해서는 경찰이 상인연합회에 ‘자체 가드(경호원)’를 충분히 배치하라고 했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통화에서 “회의에서 압사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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