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신고’도 경찰에 주의의무 발생…참사 직전 신고들, 국가배상 책임 근거로 작용”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이태원) 사고 당일 18시34분경부터 현장의 위험성과 급박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사고 예방 및 조치가 미흡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치안유지는 경찰의 책임이지만 재량이기도 하다. 재량권의 범위에서 어떤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법적 책임을 묻기 힘들다. 그러나 주의나 작위(의식적으로 행한 적극적인 행위) 의무가 발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고이다. 범죄 신고를 받은 경찰관에게는 신고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전의 다급한 신고들은 ‘범죄 신고’가 아니라 ‘안전 우려에 대한 신고’인데, 이 역시 주의의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신뢰성 있는 신고가 사고 시간과 근접해 다수 접수됐다면 주의의무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의의무가 인정될 경우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점이 입증되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2014년 대법원은 오원춘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의 신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경찰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을 이유로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 이 법 5조는 ‘극도의 혼잡’에 대해 ‘경찰이 경고·피난·억류·위해방지조치들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는 재량을 뜻하는 형식이지만 국가기관의 직무에 관한 법령이니 ‘기속재량’(원칙은 의무인데 사안에 따라 재량을 인정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명시된 법규를 위반한 게 아니라고 해도 국가 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은 있다. 대법원은 2012년 ‘위법한 직무수행’에는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행위의무가 정하여져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뿐 아니라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위반한 경우도 포함된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경찰관이나 간부 개개인의 형사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경우 주의나 작위 의무를 태만히 하거나 실수로 위반한 정도로는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경우 과실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의 미흡한 조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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