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신고’로 드러난 이상민의 거짓 해명, 진상규명 지연시켜
이 “경찰 미리 배치해 해결할 문제 아니었다” 천재지변 몰아
인파 규모부터 법적 통제 권한·경찰력 부족 등 사실과 달라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 첫 공식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가도, 경찰도 막을 수 없었던 천재지변이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면서 “서울시내 곳곳의 소요·시위 때문에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다”고 했다. 대통령실도 31일 “주최 측 요청이 없을 때 경찰이 선제적으로 국민을 통제할 법적·제도적 권한은 없다”며 이 장관을 두둔했다.
그러나 참사 직전 112에 접수된 11건의 신고 내용을 보면 이 장관과 대통령실 해명은 전부 ‘틀린 말’로 확인됐다. 당시 이태원에는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고, ‘경찰을 미리 배치했으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극도의 혼잡’ 상태였던 당시 ‘경찰이 선제적으로 국민을 통제할 법적·제도적 권한’이 있었다. 이 장관과 대통령실이 기초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정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오전 뒤늦게 참사 당일 경찰의 늑장 대처가 담긴 ‘112신고 내역’을 보고받았다. 경찰과 이 장관을 감쌌던 대통령실은 그제서야 “윤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했다”고 알렸다. 이 장관도 같은 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 보고에서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다.
서울시 공공데이터를 보면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기준 이태원에는 최대 5만7340명이 모였다.
이날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하루 이용자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8~2019년 핼러윈 행사 때 10만명 안팎이었던 이태원역 이용자는 올해 약 13만명으로 늘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이태원에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는 이 장관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집회·시위가 아니면 경찰이 국민을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대통령실 해명도 사실과 다르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신고나 요청이 없어도 경찰이 ‘극도의 혼잡’ 상황에 개입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참사 당일 서울시내 곳곳에서 열린 각종 집회에 경찰력이 투입돼 인원이 부족했다는 이 장관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날 주간 집회들은 오후 9시 이전에 대부분 종료됐다”며 “이번 사건 발생 시각은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시간적 진행 순서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 장관은 “경찰 배치에 문제가 없다”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다음날인 31일에도 해명을 늘어놨다.
이 장관은 당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축제 참가자가 8만~10만명에서 이번에는 13만명 정도로 30% 늘었는데, 경찰 인력도 130여명으로 40% 정도 증원됐다”고 했다. 하지만 130여명의 경찰 인력 중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정복 경찰은 58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마약 단속 등에 투입된 사복 경찰이었다.
참사 초기 최소한의 사실 확인 없이 면피하기에 급급했던 정부의 태도는 경찰 진상조사에도 영향을 끼쳤다. 경찰청은 참사 발생 약 2시간30분이 지난 30일 0시52분쯤 “서울경찰청에 수사본부를 구성해 지자체, 행사 주최 측 등을 상대로 안전조치 책임 등 사실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작 초동 대응이 부실해 사고를 키운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는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2일 “정부가 먼저 ‘경찰은 문제없다’는 식으로 선을 그은 탓에 경찰 내부 감찰이 늦어진 측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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