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구와 작별의 옆모습 [책방지기의 서가]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더폴락이 문을 연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처음 문을 연 곳은 대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부근이었고, 이후 북성로로 옮겨 8년 정도를 보내며 두 번의 이사를 했다. 처음의 이사 이후 더 이상 이사는 없을 것이라고 여기며 터를 잡았다. 낡고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었지만,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1층은 서점으로 2층은 워크숍과 모임 공간으로 사용하고, 숨은 공간들이 있어 그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애정으로 이곳저곳을 보수하고 수리하며 지냈다.
하지만 재건축 때문에 이사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북성로는 근대건축물이 가득한 매력적인 동네라 재건축·재개발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재건축 소식이 전해졌다. 쫓겨나듯 이사를 했고, 이후 아파트 건립을 위해 나날이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 1934년 대구 최대 백화점이 들어섰고, 한국 최초 음악감상실이 깃들었던 곳으로 북성로 일대는 근대의 패션, 영화음악 등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독특한 건축물이 곳곳에 숨어 있던 곳이다. 동네 곳곳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짧은 시간 안에 폐허가 되었다. 현재 이사한 서점에서는 매일 공사 소리와 함께 짓고 있는 아파트가 무섭게 올라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북성로뿐 아니라 대구에는 동시다발적으로 무수히 많은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어떤 동네를 가도 도시는 공사 중이다. 붉은색의 래커로 쓰인 '철거'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도열한 장면을 볼 수 있고, 길고양이들만 폐허 앞을 유유히 지난다. 223개 동, 196개 구역(정비사업추진현황 2021년 1월 기준·대구광역시 도시정비과 자료)이라는 숫자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생활과 삶과 거리와 온기가 가늠되지 않는다. 대명동, 성내동, 동인동, 범물동, 신천동…
'작별의 옆모습'은 그런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는 도시의 이면을 주목한다. 동대구역과 대구역, 서대구역 일대 기찻길 주변은 대부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그 주변을 담은 사진 206장이 한 권에 수록되어 있고, 작별의 여러 모습을 담은 에세이 86편과 모노톤 사진이 함께 담긴 단상집 한 권이 한 세트다. 2020년 3월 봄부터 2021년 1월 겨울까지 무수히 많이 걸음한 시간을 사진과 글로 엮어낸 책이다. 동대구역, 대구역, 서대구역 기찻길 주변은 현재 매일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지며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부서진 건물과 그사이 남겨진 것들, 곧 폐기물이 되어 버려질 무언가를 보며 작가는 '작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 책은 이준식 작가가 서대구역 예정지 주변을 찍은 것을 시작으로 구상한 작업을 김정애 작가와 함께 협업하여 만든 책이다. 이 작가는 '일반인 이모씨의 일일'이라는 제목으로 대구에서 7년째 매일 사진을 찍고, 매달 사진집으로 묶어내며 대구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이현동과 평리6동의 사진을 담은 기록집 '임시세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계간 문예지 '영향력'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이자 시인이다. 시집 '오래 미워한 사람에게'를 펴냈다.
책은 재개발 구역에서 나아가 수많은 작별과 만남을 경험하게 하는 기차역이라는 장소로 연결되며 작별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색이 사라진 회색빛 재건축의 풍경을 표지로, 차가운 푸른색으로 처리된 사진과 함께 무너지고 남은 자리를 보듬는 글이 함께 실려 있다. 도시의 이면을 면면히 들여다보고, 외면해 버리고 싶은 장면들을 기록하며, 동시에 이 장면만으로 기록되지 못하는 감정을 세심히 보듬어 언어로 살려 두었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보내며,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한 마음 앞에서 작별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지금은 허물어 사라져 버렸지만, 내가 더폴락 공간 여기저기를 세심히 쓸고 닦고 칠하며 아꼈던 것처럼 누군가의 시간이 고스란했을 거리, 아껴 가꾼 식물들, 고르고 골라 샀을 식기과 집기들, 남겨진 것들을 꼼꼼히 기억하고 보낸다. 사진과 글로 남겨진 것들을 기억함으로써 보낼 힘을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역과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는 풍경 앞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작별과 만남을 떠올리며 잠시 멈춰 서서 그 의미를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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