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멈추면 사회가 일시정지…이용자가 위험 떠안아
무료 서비스로 이용자 확보
사업 확장하며 독과점 귀결
이용자·서비스·생산자·상품
모든 것 연결하는 매개체 돼
경기 고양시에 사는 20대 직장인 최원영씨의 일상은 플랫폼 없이는 이어지기 힘든 모습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을 하고 퇴근해 밤에 잠들기까지 일상은 플랫폼 서비스의 연속이다. 하루 동안 이용하는 앱과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어림셈해도 20개가 넘었다. 플랫폼 서비스는 이용자, 서비스 제공자, 생산자, 상품 등을 서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람과 사람은 물론 각종 서비스와 상품까지 손안에서 연결된다.
만약 플랫폼 서비스가 갑자기 기능을 멈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달 15일 SK C&C의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는 그동안 편리함에 잊어왔던 ‘플랫폼에 기반한 초연결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국민앱 멈추자… 일상도 끊겼다
화재로 갑자기 ‘먹통’ 되자
송금·판매·예약 피해부터
개인부터 정부까지 ‘올스톱’
초연결사회 위험성 드러나
사용자 4700만명. 사실상 전 국민이 쓰는 메신저앱 ‘카카오톡’이 멈추자 일상이 끊겼다. 개인 소통은 물론 기업과 정부기관도 카카오톡을 업무용 소통채널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카카오톡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송금할 때 카카오페이를 이용하고, 이동할 땐 카카오T로 택시를 부르고, 여가 시간엔 카카오 웹툰과 멜론을 이용한다. 카카오 먹통은 사실상 모든 국민에게 크고 작은 피해로 돌아갔다.
특히 카카오톡 채널을 활용해 물품을 판매하던 소상공인의 피해가 컸다. 수제가방 업체를 운영하는 문경량씨(32)는 하루 평균 20~30개의 가방을 카카오톡 채널을 이용해 판매해왔다고 한다. 가방 한 개 가격은 40만원선, 하루 매출은 1000만원가량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먹통이 된 날은 가방을 한 개도 팔지 못했다. 심지어 톡채널 복구가 17일 오후에나 이뤄졌고, 복구 뒤에도 사진 열람이 되지 않아 3일 이상 영업을 하지 못했다. 카카오톡이 오랜 시간 먹통이 된 데 대해 문씨는 “카카오는 운 좋은 스타트업일 뿐 대기업 마인드가 없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카카오톡을 대체할 채널이 없어 떠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김성열씨(56)는 카카오T 콜을 받기 위해 월 3만9000원짜리 유료 회원제에 가입했다. 화성은 인구 밀집도가 낮아서 일반 손님보다는 콜 손님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오후 3시 이후에는 카카오T가 먹통이 됐고, 콜 손님을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 통상 하루 13건 정도 콜 손님을 태웠지만, 이날은 일반 손님 한 명을 태운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김씨는 “카카오에서 피해 신고를 받는다고 해서 신청은 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기사들은 온라인 접수 방법을 잘 모르니까 발만 동동 구른다”면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도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카카오톡 마비로 중증 코로나19 환자가 병상을 배정받지 못하고 대기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15일 오후 인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실에 갈비뼈가 부러진 코로나19 확진자 A씨가 찾아왔다. 하지만 해당 병원엔 코로나19 전담 병상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했다. 평소 보건소·지자체·중앙사고수습본부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 기능을 활용해 병상 배정을 진행해왔다. 이날 카카오톡 연결이 끊기자 병상을 찾는 데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이 환자는 20시간 이상 응급실 음압병동에서 병원 이송을 기다려야만 했다.
■초연결사회 위험 ‘미리보기’ 버전
몸집 커지는 플랫폼 기업
보안·안전에 책임 다하는
사회적 제도 마련해야
카카오 먹통 사고는 초연결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위험 상황의 ‘미리보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초연결사회는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촘촘하게 연결된 것을 넘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거미줄처럼 짜인 사회를 뜻한다. 지금은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펼쳐지는 변화 정도이지만, 미래에는 집 안의 모든 전자기기는 물론 도시 전체 시스템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스마트시티’로 확장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고도화된 네트워크는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에어택시(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미래산업으로 인류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위험성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2015년 해외 정보기술(IT) 매체 와이어드의 기자 앤디 그린버그는 ‘화이트 해커’(해킹 방어 전문가)에게 자신의 지프 자동차를 해킹해달라고 의뢰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각종 서비스들이 해킹 등 보안 위협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해커들은 인터넷을 통해 차량 수천 대를 무선 제어할 수 있는 해킹 기술을 활용했다. 그 결과 지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접근해 그린버그의 차량 에어컨, 라디오, 와이퍼 등을 마음대로 조작하며 운전을 방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린버그는 “자동차 회사들은 차량이 인터넷과 바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차량에 장착했다”며 “자동차를 스마트폰처럼 만들려는 기술 덕분에 해커들은 차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만 안다면 위치정보시스템(GPS) 좌표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차량의 브레이크 연결까지 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카오 계열사인 카카오모빌리티는 현재 자율주행, UAM 실증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만약 향후 자율주행이나 UAM 운행 도중 카카오 서버 마비가 일어났다면,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서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자율주행, UAM과 같은 서비스가 본격화되기에 전에 플랫폼 기업들이 보안과 안전에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료 서비스로 데이터 모아 사업
플랫폼 기업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장악해가는 변화는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플랫폼이 시장 자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소비자, 광고주, 서비스 제공자, 생산자, 상품 등을 서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만 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앱스토어와 운영체제 ‘iOS’는 개발자가 새로운 앱을 만들어 이용자들에게 판매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플랫폼 산업은 ‘승자독식’ 구조로 귀결된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네트워크’ 특성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카카오톡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친구들이 많이 쓰는 메신저앱을 선택하다보니 카카오톡은 어느새 ‘국민앱’으로 자리매김했다. 카카오는 막강한 네트워크 효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수익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에는 선물하기·송금 등 페이 기능이 추가됐고, 이후 택시 호출앱, 은행앱 등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해갔다. 올해 기준 카카오 계열사는 136개로 늘었고,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골목상권 침해 비판도 피할 수 없었다.
대다수의 플랫폼 기업들이 겉으로는 무료 서비스를 내걸고 이용자를 확보한 뒤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인다. 닉 서르닉 런던대 킹스칼리지 연구원은 책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플랫폼 회사들은 한쪽에서는 서비스나 상품을 저렴하게 심지어 무료로 제공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격을 올려 손해를 만회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구글은 검색엔진으로 이용자를 모으고,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광고주의 표적 광고를 지원한다.
■“독점 깨야 신산업 성장 기회 생겨”
문제는 플랫폼 산업에서 특정 기업이 다수 이용자를 확보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면 이 구도를 깨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데이터를 원료 삼아 성장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경쟁 업체가 동일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네이버쇼핑의 경우 2015년 시장점유율이 5%에 불과했지만, 알고리즘 설계 시 쇼핑몰 비교 검색 과정에서 자사 쇼핑을 우위에 놓는 방식으로 2018년 시장점유율 21%로 1위 쇼핑몰에 올랐다. 앱마켓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 또한 독점적 지위가 굳어진 상태다.
그러나 독점을 깨야 신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변호사)은 “1970년대 미국 AT&T가 통신망을 장악하자 미 법원은 이를 8개로 분리하라고 판결했고,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신생기업이 ‘인터넷익스플로러’ 등의 혁신 기술을 선보이게 됐다”며 “적절한 규제로 독점 구조를 깨야 산업이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이윤정·이창준·권정혁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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