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읍참마속과 Incident
읍참마속(泣斬馬謖).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이다. 군령을 어기고 멋대로 전투를 지휘하다 참패한 마속을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참형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사과하며 이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윤 청장은 참사 전 시민들의 112신고가 다수 있었지만 현장 대응은 미흡했다면서 “읍참마속의 각오로 감찰과 수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경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부하들을 엄벌하겠다는 의미지만 윤 청장이 대국민 사과에 이 표현을 쓴 것은 부적절하다. 가족을 잃고 비탄에 빠진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힌 것 아닌가.
윤 청장의 읍참마속은 경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윤 청장은 자신을 포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이번 참사에 잘못이 없다고 이미 결론을 낸 듯하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8곳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용산경찰서장은 대기발령됐다. 하지만 윤 청장이 읍참마속의 주체인 이상 수사의 칼끝이 경찰청장실이나 행안부 경찰국, 대통령실 등 윗선을 겨냥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날 행안부는 이 장관이 참사 발생 1시간여 뒤인 오후 11시19분에 경찰 직보가 아닌 행안부 내부 알림 문자를 통해 사고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자신들은 참사를 몰랐다며 경찰 수사에 차단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정부 고위 인사들의 참사에 대한 시각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한 총리는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이태원 참사를 ‘Incident(사고)’로 표현하고, 정부 책임을 묻는 질문에 웃으면서 답했다. 영국 기자는 정색하고 이를 ‘Disaster(재앙)’라고 고쳐 글을 올렸다. ‘Incident’는 우발적 사건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고, ‘Disaster’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재해라는 뜻이다. 외국에서 한국 유학생과 관광객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나라 총리가 정부 책임이 없다고 하면 한국 국민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특히 그가 농담을 섞어 웃으며 답한다면?
주권자인 시민이 보기에 한 총리나 이 장관, 윤 청장 모두 ‘읍참’해야 할 대상이다. 솔직히 말하면 ‘읍’을 넣는 것도 아깝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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