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전 최초 신고자 “상황 모르고 웃으며 올라오는 이들 보니 무서웠다”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압사 참사 당일 처음으로 112에 신고한 시민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서울 지경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태원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사고가 난 골목) 위에서 한 번 공포를 느꼈다”며 “세계 음식 문화 거리를 구경하는데 그 위에도 이미 (사람들과) 몸이 뭉쳐서 같이 다녔고, 제가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정도였다. 위에서 떠밀리면서 중학생 딸과 남편을 놓쳤다”고 했다.
A씨는 “저와 키가 비슷한 딸과 같이 오다가 (인파로) 빽빽한 사이에서 딸을 쥐고 가려고 하면 더 위험해서 제가 한쪽으로 살짝 빠져서 공간을 만들고 딸이 내려갔고, 그때 딸과 남편을 놓쳤다”며 “그쪽 길을 잘 알기 때문에 사고 난 지점이 비탈이니까 자신이 없어서 직진해서 해밀톤 호텔 안 옷가게로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골목 밑으로 내려와 딸과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A씨는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웃으며 아무런 상황도 모른 채 골목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위에 많은 사람들이 정체돼서 꼼짝도 못 하는데 1번 출구에서 어마어마한 인구가 올라와서 그 골목으로 올라가는 걸 보니까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 112에 전화를 했다”고 신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34분쯤 이태원 해밀톤호텔 부근 이마트24 편의점 쪽에서 112 신고 전화를 한 시민이다. 이날 밤 10시15분 참사가 발생하기 3시간41분 전이었다.
A씨는 “금·토요일에 사람이 많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다닐 수 있는데, 그날은 무슨 콘서트장에서 꽉 조이는 정도였다”고 했다.
이어 “저희가 내려올 때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을 때인데 미취학 아동들을 목마를 태우는 아버지도 있었고 유모차 밀고 내려오는 엄마도 있었는데 그분들도 어떻게 내려왔을까 걱정이 됐다. 그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112 신고 당시 A씨는 “좁은 골목인데, 클럽에 줄 서 있는 인파와 이태원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 겨우 빠져나왔는데 통제 좀 해 주셔야 할 것 같다”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되고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 날 것 같다는 거죠”라고 되묻자, A씨는 “네 네, 너무 너무 소름 끼쳐요”라고 답했다.
A씨는 ‘압사당할 것 같다’는 표현을 진짜 썼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 단어를 썼는지, 압사란 표현이 머릿속에 있었다는 건 분명히 아는데 가급적 입 바깥으로 안 쓰기 때문에 긴가민가했다”며 “나중에 딸이 ‘엄마 통화할 때 그 단어 썼어. 내가 들었어’ 그러더라”고 답했다.
경찰은 A씨의 신고에 현장에 출동하긴 했지만, ‘일반 불편 신고’로만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A씨는 “속이 많이 상한다. 제가 전화했을 때는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그 이후에 인구가 점점 많아졌다”면서 “(112 신고 후) 택시 타고 집에 오면서 거기(사고 현장)에서 젊은 사람들한테 ‘위험해요’라고 하면서 인간 띠라도 만들어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이어 “그 후 경찰이 와서 그곳을 통제하고 다음 단계로 도로, 지하철을 통제하는 등 (경찰이) 그 안에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더 강한 통제를 했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그걸 판단해 주거나 할 수 있는 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A씨 신고 이후 참사 직전까지 10건의 112 신고가 더 들어왔지만,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건 4건에 불과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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