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사과 듣고 왜 화가 더 날까?
'우리 가족을 파멸시켰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노인이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실행합니다. 친일파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긴커녕 '그때는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라며 당당해 피해자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죠.
'나는 틀렸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의 칼럼 제목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를 비롯해 대표 칼럼니스트 8명이 각자 과거에 쓴 칼럼의 오류를 인정하는 일종의 '반성문'이었는데, 큰 화제가 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이 기획 의도에 대해 '언론부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지적인 소통이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반성의 무게만큼 한발 앞서게 되니까요.
'사죄의 말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어제 이태원 참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이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숙였죠. 이전까진 유감 표명만 있었는데, 참사 사흘만에 정부가 공식 사과한 겁니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린 건 아니었다.'라더니 여론이 악화하자 고개를 숙였고, 그래서 마지못해 한 사과, 뒷북 사과라는 말도 나왔죠.
'총, 균, 쇠'를 쓴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대변동'에서 위기 극복의 첫 단계를 '인정'이라고 합니다.
위기의 본질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자구책 마련이니만큼, 절대 남을 탓하지 말라면서요.
지금 대한민국은 솔직한 자기 평가를 하고 있는걸까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야 할지는 알고 있는걸까요.
위기는 파도처럼 개인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듭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추락과 번영으로 갈리게 되죠.
'위기를 부르는 건 오만'입니다. 그리고 그 오만은 '진지한 사과'에서 드러나게 돼 있지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사과 듣고 왜 화가 더 날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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