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비용을 할인해주면

한겨레 2022. 11. 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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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15일 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에스피씨(SPC) 계열 에스피엘(SPL) 경기도 평택공장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기계에 흰 천이 덮여 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제공

[세상읽기] 손아람 | 작가

작년 6월, 광주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져 9명이 죽었다. 회사가 곧 망할 것처럼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이어진 재판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현대산업개발에 부과된 벌금은 겨우 2천만원에 불과했다. 지자체인 서울시의 8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오히려 더 무거운 형벌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이 역시 대체 과징금 4억여원을 내고 피해갈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건설안전특별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법안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에 매출액의 3% 이내 벌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안대로 벌칙이 적용됐다면, 현대산업개발이 내야 할 벌금은 1천억원에 이른다. 한해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정말로 회사를 휘청이게 만들 만한 액수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업계의 반대로 국회에서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의 원안은 법 위반 기업에 매출액의 10% 이내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역시 과잉 입법을 주장하는 재계의 반대로 벌금 상한이 5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아직 처벌 사례는 없지만, 채석장 붕괴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한 삼표산업이 1호 처벌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매출액이 7천억원에 달하는 이 기업이 낼 벌금은 원안대로라면 최대 700억원, 현안대로라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최대 50억원이다. 전자는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고, 후자는 회사가 산업 환경 개선에 지속해서 들어가는 비용과 벌금의 크기를 비교해보며 주판을 조심스레 굴려볼 만한 금액이다. 법이 기업을 죽이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불법에 상응하는 불확실한 벌칙이 준법에 들어가는 고정적인 비용보다 경제적이라면, 기업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확률에 판돈을 걸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이 기업을 죽이는 대신 기업이 사람을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법률의 벌금 체계가 언제나 짜지만은 않다. 2017년에는 퀄컴에 역대 최대 기업 벌금인 1조300억원이 부과된 적이 있다. 여기 적용된 공정거래법은 매출 비례 벌금 제도가 논의될 때마다 과잉 입법과 위헌을 주장하는 재계가 유일하게 선뜻 반기는 법이다.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규정한 이 법 때문에 기업이 죽는다고 우는소릴 내는 기업인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 벌칙 규정은 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거꾸로 살린다. 공정하게 경쟁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망하겠다는 발상은 경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이 지금의 모습으로 ‘과잉 입법’되지 않았으면 국내 재벌기업은 외국계 대기업의 등쌀에 밀려 모두 고꾸라졌을 터다. 불법 책임을 막대한 비용으로 기업에 전가하여 준법을 유도하는 원리가 사실은 우리의 입법 유전자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공정거래법의 훌륭한 입법 취지가 다른 법에는 반영되지 못하는 걸까? 왜 공정거래법의 과징금은 기업을 살리는데 건설안전특별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과징금은 기업을 죽인다는 걸까? 우리 사회가 다른 기업을 해하는 기업에 비해 다른 사람을 해하는 기업에 너무 관대한 탓이 아닐까?

에스피씨(SPC)그룹 제빵 공장 기계에 노동자가 끼여 사망하던 날에도, 이 공장에서는 4만개가 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전국의 파리바게뜨에 공급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고 빵을 4만개나 더 찍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적인 관점의 질문이다. 기업 관점에서는 빵을 4만개쯤 찍어낼 수 있는 공장이면 인간의 죽음을 감수해볼 수 있다. 연간 1천만개 가까운 빵을 만드니 생산액이 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벌금액과 피해자 보상액을 합쳐도 그 액수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어떤 사고도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하는 안전 절차만큼 위협적이지 않은데, 안전이 어떻게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기계에 간단히 뚜껑을 덮기만 해도, 상황에 따라 생산라인을 잠시 멈추기만 해도 피할 수 있는 산재사고가 한해 수백건씩 파리바게뜨 공장에서 일어나는 이유다.

사고는 제빵 공장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사법 체계에서 시작된 것이다. 법이 불법의 비용을 헐값으로 할인해준 순간 지난 사고들은 예견되어 있었다. 기업이 산업재해를 값싼 과태료로 면피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내년에도 똑같은 비극을 목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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