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야기를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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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학교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1박2일 수련회를 다녀왔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팀별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처음 팀이 꾸려지면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그라운드 룰'을 정한다.
자신의 장점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로 했는데, 모두가 자기 장점을 말하기보다 다른 친구들에게 "너의 장점을 알려줘"라며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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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숨&결] 유지민 |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학생(고1)
지난 9월, 학교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1박2일 수련회를 다녀왔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네 이야기를 들려줘.”
마법과 같았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전 수련회가 생각났다. 코로나가 오기 전 초등생, 중학생 때 갔던 수련회에서는 시끄럽고, 언성을 높이며 질서 없는 대화를 나눴다. 물론 더 어렸으니 그랬겠지만, 말하는 방식에서 마찰이 생겨 싸움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화가 매우 차분했으며 서로 경청하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조금 더 나이가 들기도 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학교의 대화 문화 덕분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팀별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처음 팀이 꾸려지면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그라운드 룰'을 정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그라운드 룰’은 다음과 같다.
①남의 말 끊지 않기. ②눈 마주치고 대화하기. ③최대한 상대방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서 나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기. 이 룰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 태도와 실천 규칙이 포함된다. 가장 중요한 건 교사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팀의 특성과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팀 활동을 하며, 이 그라운드 룰을 지키고 성찰하는 과정을 여러번 거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경청하는 태도를 실천하게 됐는데, 수련회에서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도 이런 자세가 보였다. 한 사람이 말할 때 모두가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고, 중간에 끼어들지 않는다. 내가 할 말을 생각할 때도 이전 대화 흐름과 관계 있는 주제를 찾는다. 이런 규칙을 지키다 보니 장장 세시간을 대화했는데도 주제가 세번 정도밖에 바뀌지 않았다.
“네 이야기를 들려줘”가 나왔던 맥락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장점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로 했는데, 모두가 자기 장점을 말하기보다 다른 친구들에게 “너의 장점을 알려줘”라며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이런 경험 뒤 과거의 나를 돌아봤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던 때가 훨씬 더 많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머릿속에서는 ‘다음에 나는 무슨 말을 하지?'를 고민했다. 예전 학교의 또래 친구들도 비슷했다. 경청의 중요성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팀 프로젝트 형식의 수업을 하면서, 팀의 결과물이 나와야 하니 자연스럽게 그라운드 룰을 지키게 됐고 의식하지 않아도 바람직한 대화법에 익숙해진 것이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정치 토론을 보고 있으면, 토론의 핵심이자 본질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두가 자기 말을 하려고만 할 뿐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문서답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런 걸 과연 토론, 혹은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비단 정치에서만이 아니라 가정, 학교, 회사, 학원, 동아리, 친구모임에서까지 ‘잘 듣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경청에는 상대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설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힘이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갈등전문가 어맨다 리플리는 “‘고도 갈등’(선과 악의 구도가 형성되어 ‘우리'와 ‘그들' 간의 반목으로 치닫는 갈등)의 가장 좋은 해법은 경청이다. 비록 사실과 다른 말을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듣고, 들은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정확히 표현해주면 상대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듣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고 표현하면 금상첨화란 말이다. 아울러 대화는 행위이기 때문에 실천해야 한다. 오늘 이 글을 읽고 난 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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