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정부 리스크` 시대

2022. 11. 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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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실패한 정책은 없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비핵화, 부동산 등 모든 정책에서 말이다. 아무리 일을 그르친 경우에도 정부는 절대로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책임을 청와대가 나서서 묻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뻔뻔하게 버티는 공직자들은 계속 출세의 길을 달렸다. 정부의 잘못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만 않으면, 국민 여론을 갈라치기 해서 얼마든지 찬반양론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식이었다.

이런 위선의 정치를 종식시키라는 국민적 열망이 쌓였다. 그 덕택에 집권한 윤석열 정부도 결국 같은 길을 가려하고 있다. 아무리 사적 대화라지만 외교 행사장에서 대통령이 야당의원들을 지칭해 이 XXX라고 욕설을 한 것이 보도가 됐다. 한 언론사의 "바이든-날리면" 왜곡보도 문제로 집중적으로 화살을 돌렸다. 덕분에 대통령의 막말 파동 사태는 가짜뉴스를 비판하는 팬덤정치 속에 묻혀 버렸다.

미국 의회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해 북미산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해놓고 있는 한국은 전기자동차 수출 시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게 됐다. FTA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해서 시행될 때까지 그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공직자들 중 사과하거나 징계 받은 사람은 없다. 급하게 의회를 통과해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는 게 정부의 무책임하고 뻔번한 변명이다. 사과하거나 징계하게 되면 대미 통상외교가 실패한 사례로 공식화되니,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이 보내온 불분명한 내용의 친서 한 장으로 버티고 있다.

이태원 뚫린 길에서 사상 초유의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국민의 안전을 관리하는 공직자 중 자발적으로 사과하거나 안전관리가 결과적으로라도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잘못이 공식화되니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 청와대까지 지배한다는 증거다. 3일이 지나고 미리 압사 위험을 신고하는 시민제보가 다수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서둘러 관련 공직자들이 줄줄이 사과하기 시작했다.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제도가 신상필벌이다. 대한민국 국가 운영에서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된 신상필벌이 사라졌다. 상을 받는 사람들은 미리 특정 조직 출신이나 특정 성향을 지닌 인사들로 정해져 있고, 벌을 받는 사람들은 소신껏 일한 사람들 중에서 적폐로 몰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직자들은 사회문제가 터지면 되레 강하게 되받아치는 길을 택하고 있다.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한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축제 참가인원과 배치된 경찰 인력의 비율 측면에 있어 문제가 없었다는 걸 강조해댔다. 사상 초유의 사건의 원인이 전적으로 젊은이들의 과도한 축제행위에 있었다는 논리로 몰아부쳤다.

"섣부른 예측이나 선동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경고하는 공직자의 태도 속에서 전 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임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를 파악해 고쳐나가기는커녕, 문제를 지적하는 걸 적폐세력으로 몰아가는 데 진력하는 짓 말이다. 결국 사실을 은폐하면서까지 팬덤정치에 의존하는 길을 가려했던 것이다.

한국사회의 팬덤은 견고하다. 지금은 좌우 체제전쟁의 시대이니 조금이라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양 진영 모두 상대방의 공격엔 한없이 열성적이고 자기편의 잘못엔 한없이 관대하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미래를 수립하기 위해 투쟁하는 중이니 투쟁세력의 약점을 들춰내는 행위는 모두 적폐세력이고 내부총질이라고 한다. 팬덤정치와 포퓰리즘의 유혹은 이미 한국사회를 접수했고, 좌우진영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빼박증거'가 보도돼야만 부랴부랴 줄줄이 사과하는 건 사과가 아니다. 경제 및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쳐도 그 대응 정책의 성패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을 것이니 위기는 점점 심화될 것이다. 미국 의회에 로비하기는커녕 중요한 입법관련 정보 하나 파악하는데도 실패한 통상정책 라인은 계속 유지되니, 통상정책이 제대로 발휘될 리 만무하다.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명백한 실수 하나 인정하지 않고 팬덤의 품으로 향하는 '한국정부 리스크'를 국민들은 항상 따로 계산해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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