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정치권의 `네탓` 몰이, 신물 난다

2022. 11. 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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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1718년 숙종 44년 10월 28일 밤. 과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선비 80여명과 백성이 한강에서 익사했다. 날이 저물자 강 건너기를 서두르던 사람들을 너무 많이 태운 탓이다. 배는 무게를 못 이기고 뒤집혔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물에 빠진 선비들과 백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강변에 있던 별장(別將, 지방의 산성·나루 등의 수비를 맡은 종9품 무관)과 사격(沙格, 배를 운행할 때 노를 젓는 사공과 그를 돕는 격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배를 탔던 100여명 모두 죽었다. 상당한 인명피해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 참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수찬(修撰, 홍문관에 소속된 정6품 관원) 김상옥은 상소를 올려 "별장과 사격의 무리가 끝내 구제할 뜻이 없었으니 통탄할 일"이라며 즉각 처벌과 유배형을 건의했다. 또 "먼 지방의 많은 선비가 과거에 응시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물에 빠져 죽었고, 숙질과 형제가 배를 탔다가 함께 빠져 죽은 자도 있을 것"이라며 "제사를 지내 영혼을 위로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숙종은 즉시 답서(答書)를 내려 책임자를 처벌하고, 강가에 단(壇)을 설치해 제사를 지내게 했다. 당시 숙종이 죽은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낸 이유는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재난의 원인은 왕의 책임으로 간주됐다.

재난이 일어나면 중신(重臣)들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다. 현대 광역자치단체장에 해당하는 관찰사들은 책임지고 사직을 청했다. 1491년 성종 22년 강원도관찰사 김여석은 폭우로 산이 무너져 백성 11명이 압사(壓死)하자 "허물이 실로 신(臣)에게 있다. 신의 관직을 파면해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신해달라"고 간청했다. 이들은 때로 금주령을 건의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발생한 이에 대한 위정자들의 대처방식은 최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태원 참사는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의 작은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게 되면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이다. 156명이 사망했고, 157명이 부상당했다. 500년이 지난 후에 벌어진 참사지만, 경찰의 대응은 조선 시대 때와 나아진 게 없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3시간여 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는 등 위험 징후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경찰은 4건만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도, 별장과 사격처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과하고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감찰과 수사에 착수했다.

오히려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조선시대보다 더 어리석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통역 리시버가 작동이 안 되자 상황에 안맞는 조크를 해 논란에 휩싸였다. 한 총리는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결국 한 총리는 2일 해명자료를 내고 사과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면피성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진정성 없이 떠밀려서 한 사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와중에 술판을 벌인 얼빠진 정치인들도 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된 직후 당원 수십 명과 술자리를 가져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다음날 서 의원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도록 당 윤리감찰단에 지시했다. 서 의원과 경우는 다르지만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소맥(소주와 맥주) 만찬'이 있는 모임에 초청받아 참석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다만 김 위원장이 노조 간부들과 소통하기 위해 갔고 본인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여야는 이번 참사와 관련한 용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희생자'와 '사망자', '참사'와 '사고' 등을 두고 적절성 여부를 다투고 있다. 사고에 대한 예방책을 논의해도 부족할 판에 의미없는 싸움만 벌이는 셈이다. 과연 오늘날은 조선시대와 얼마나 다른가. 정치권의 '네탓' 몰이에 신물이 난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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