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특성화고 출신도 다 같은 노동자입니다

한겨레 2022. 11. 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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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아직도 사회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나 가는 곳, 질이 나쁜 애들이나 가는 곳’이란 편견으로 보고 있다. 특성화고의 본래 목적은 특정 분야의 인재양성이다. 도대체 그 목적은 언제 현장에 적용되어 뿌리 깊은 편견을 떨칠 수 있을까.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소속 고교생과 졸업생들이 학생의 날 90돌을 기념해 2019년 11월3일 낮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의 6대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6대 요구안은 양질의 고졸 일자리 확대, 교내 실습실 안전 보장, 특성화고 차별 정책 개선, 졸업 후 사회안전망 확보, 노동인권교육 전면 확대, 학생 정책 참여 보장 등이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최예린 | 마니또 공동운영진

2년 전 이맘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간 것이다. 선생님과 함께 학교와 연계된 회사 중 한 곳에 면접을 보러 갔다. 금속 부품 도금업체였다. 살면서 그만큼 긴장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화학 분야 4개나 되는 자격증이 말해주듯,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나는 어느 정도 합격하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읽은 면접관은 몇 가지 질문 뒤 현장실습 날짜를 정해줬다. 3주 실습기간을 거치고 서로가 마음에 든다면 정식채용으로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출근 첫날부터 사무실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바로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다. 첫 업무는 도금 용액의 농도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도금은 용액 농도의 비율이 정확해야 부품별로 거래 업체가 원하는 두께로 도금이 된다. 도금 두께가 일정하게 쌓일 수 있는 농도가 맞는지 분석하고 이를 조정하기 위해 얼마나 시약을 넣어야하는지 계산하는 업무였다. 업무지침이라는 게 분석 방법이 적힌 설명서 한 장이 전부였다. 착용할 안전용품이 있는지 물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우선 급하니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뭔가 꼬여가는 느낌이었지만, 첫 직장에서 좋지 않은 기억만 남기기 싫었기에 ‘열심히 하면 괜찮겠지’ 생각했다.

일 시작하고 나흘째가 되자, 손에서 진물이 나고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작업용 장갑이나 안전장비가 있는지 다시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심드렁한 반응들뿐이었다. 그렇게 맨손으로 일하며 일주일을 더 보내자 첫날 면접을 봤던 부장님이 내 앞으로 장갑 하나를 던져주었다. “왜 장갑도 없이 일해 나를 이상한 사람 만드냐”는 타박과 함께. 얼마 전 현장을 둘러보다 나를 본 사장이 한소리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장갑이 생겨 다행이라 생각했다.

며칠 뒤 또다시 새 업무를 줬다. 새로운 업체로부터 도금 주문이 들어오면 그에 맞는 생산 라인을 추가로 만들게 되는데, 그 준비 작업이었다. 먼저 그 제품이 우리 회사로 오기 전 다른 곳에서는 어떤 비율과 두께로 도금을 했는지 알아야 했다. 영업을 담당했던 부장님에게 이 전 자료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이번에도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사정을 말하자 부장님은 내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어쩌냐, 혼자 어떻게든 알아서 하라’며 다그쳤다. 도움 받을 곳도 물어볼 곳도 없어진 나는 막막했다. 결국 혼자 몇 백 평이 넘는 회사를 뛰어다니며 비율을 알아내야 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어리고 일 잘하는 실습생이란 이유로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맡은 업무를 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제때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부족하면 남아서라도 하면 되지 않겠냐”고 상사가 말했다. 그때부터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하지만, 통장에 찍힌 월급은 전과 다름없는 160만원이었다. 상사에게 조심스레 연장근무 수당 얘기를 꺼냈다. 바로 “네가 맡은 일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해서 밤까지 남아서 한 일이지 연장근무를 시킨 적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한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현장실습생 계약서 내용은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현장실습 기간이 지나고 정규직이 됐지만 1년 뒤 퇴사했다. 열심히 일해도 그에 따른 인정이나 대가가 따르지 않았기에 공허함이나 허탈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같은 처지인 고교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입사 때는 사무직이라고 했다가 발령은 생산직으로 낸다던가, 고졸에게 월급을 다 주는 게 아깝다며 근무일수를 누락하기도 하는 등 정규직이 돼도 고졸이라는 편견 속에서 차별받고,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분명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나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나 가는 곳, 질이 나쁜 애들이나 가는 곳’이란 편견으로 보고 있다. 특성화고의 본래 목적은 특정 분야의 인재양성이다. 도대체 그 목적은 언제 현장에 적용되어 뿌리 깊은 편견을 떨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퇴사 후 한 달을 자괴감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친구 소개로 대기측정환경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오래 일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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