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파티

한겨레 2022. 11. 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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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이태원역 1번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와 국화들이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며

성기완 | 시인·뮤지션·계원예술대 교수

교실에서 출석 부르기가 두렵습니다
젊은님 귀신님들이
천국 입구에서 왜 내 차례냐고 아우성인데

김지훈 * 네
교수님이 출석 부를 때 바로 대답한 당신이
그 좁은 골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 이 이름들은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이름들에서 무작위로 가져왔습니다 .
그 인파 속에 한 분쯤은 계셨겠죠 .)

이민준씨 넵
팀장님이 톡했을 때 바로 튀어간 당신이
그 좁은 골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박예진 간호사 네에
원장님이 불렀을 때 바로 차트를 집어든 당신이
그 좁은 골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정유진 순경 넵
경감님 호출에 바로 뛰어간 당신이
그 좁은 골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서연이 왔니 여기요
점장님이 찾을 때 바로 손을 든 당신이
그 좁은 골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경민아 응
엄마가 불러 대답한 내 아들이
그 좁은 골목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유나야 왱
아빠가 부르면 바로 고개들 내 딸이
그 좁은 해밀턴 옆골목 5.5평 생지옥에서
살아
돌아
오지
못했다구요

교수야 팀장아 원장아 경감아 점장아 엄마야 아빠야
너넨 지옥 맛 모르지
마스크 뒤에서 친구들이 차갑게 웃습니다
핼러윈스럽게

젊은님들 얼굴에
젊은님 귀신님들 마스크가 씌워져 있습니다
씨피알 하고 씨피알 당하는 사이
서로의 운명은 몇 초 차이로 갈렸으나
서로가 서로의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가면으로 위장하고
치밀어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나눠
갖습니다 공 -유 -합 -니 -다

착하디 착한 젊은님들은
3년 동안 입도 뻥끗 안하고 지냈죠
알아요 그게 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거
우리들의 공헌은
최대한 숨을 차단하고
손길을 거두고
얼굴을 가리고
마지막으로 파티에서
숨을 거두는 일

젊은님 귀신님들아
마음 속에 가둬 놓은 지옥을 나와요
이제 꺼내요 시뻘건 심장을
아무런 탈출구도 없이
우리는 왜 학원 구석의 석고상 마냥
영원한 정지상태가 됐나
우린 왜 밀납인형이 되어야 했나
밀납을 깨고 살갗을 덧칠해요
커튼을 찢어 망토를 만들어요
나는 슈퍼맨
너는 원더우먼

이번 행사는 주최측이 없답니다
엄마 아빠 선생님 교수님 팀장님 원장님
사장님 장관님 대표님 시장님 대통령님
아무도 어떤 행사도 주최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대신 파티를 열고
급히 예정에 없던 초대장을 만들어
초대해 주신 건가요
망할 어른들은
주최측이 없어서 책임도 없답니다
그저 애도 기간이니 모든 행사를 취소한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광장의 문을 닫고 축제 티켓을 찢어버립니다
너네는 위험하니 그냥
가만히 있어 안전하게
또 이 짓인 거죠
아닙니다 이건
젊은님을 바다에 빠뜨려 귀신님들 되게 한 게
아직 십년도 안 됐다구요
이번엔 좁디좁은 골목길에 몰아넣어
숨도 못 쉬고 몸이 터져버리게 만들다니
절대 아닙니다 이건

젊은님 귀신님들
영원히 아무도 주최하지 않을 테니
13만이 아니라 130만 1300만이 모여
보고 듣고 만나고 부딪히고
즐기고 맛보고 만끽하며 사랑하는
영원히 음악이 이어지는 DJ 파티를
주 !최 !해 !요 !
기가 꺾여 더 이상 못 노는 게 아니라
기세등등 마음껏 놀고 원 없이 춤을 추는
테크노 파티의 초대장을 만들어 세계에 뿌려요
그 파티에
우리 모두를 초대해요
영원히 그 누구도 절대 주최하지 않을테니
우리가 열어요
주인 없는 파티를
아무도 주인이 아니어서
모두가 주인인 성대한 파티를

젊은님 귀신님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저 대신 지옥 맛을 보고
저 대신 천국행 열차를 탄
젊은님 귀신님들을 위해
제가 대신 감옥에 가겠습니다
광장의 열쇠를 내드리고
제가 대신 독방에 갇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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