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상지시할 때도 경찰수뇌부 전혀 몰랐다
밤 11시 36분에야 상황 인지
윤 대통령은 11시 21분 첫 지시
용산구청,경찰서 등 8곳 압색
수뇌부 경질 가능성 높아져
밤 11시 36분에야 상황 인지
윤 대통령은 11시 21분 첫 지시
용산구청,경찰서 등 8곳 압색
수뇌부 경질 가능성 높아져
‘이태원 참사’ 당일 치안 책임자들인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사고 사실을 늦게 보고받은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들은 심지어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1차 지시를 내릴 때까지도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 ‘압사 사고’ 신고를 11건이나 받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데 이어, 늑장 보고까지 불거지면서 경찰의 총체적 부실과 기강해이가 도마위에 올랐다. <관련기사 A0면>
이날 경찰에 따르면,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지난달 29일 참사가 일어난 지 1시간 21분이 지난 밤 11시 36분에서야 처음으로 김 청장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보고했다. ‘압사 위험’을 경고한 112 첫 신고가 오후 6시 35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위험이 시작된지 5시간이나 지나서야 이 서장이 상급자인 김 청장에게 보고를 한 것이다. 김 청장은 30일 오전 12시 25분 현장에 도착했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12시가 넘어서 이태원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받았다.
치안 책임자들의 사고 인지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늦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1분 국정상황실은 윤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 소방당국이 119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 15분으로부터 38분 뒤인 10시 53분 국정상황실로 바로 보고를 올렸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11시21분에 “신속한 구급과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찰의 무너진 지휘·보고 체계는 초동대응 부실로 이어졌고, 결국 대참사를 막는데도 실패한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2일 서울지방경찰청·용산경찰서·용산구청 등 총 8곳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또 늑장 대응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대기발령 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윤 청장을 비롯한, 김 청장 등 경찰 수뇌부 거취도 결정될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핼러윈 참사의 비극의 배경에는 경찰의 총체적인 기강해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장 경찰관들은 시민들의 ‘압사 경고’를 수차례나 무시했고, 수뇌부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보다도 늦게 상황을 보고받았다. 윤 대통령이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지방경찰청장보다 상황을 먼저 파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수장들의 ‘늑장 대응’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일 경찰에 따르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 21분 뒤에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 지역을 담당하는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지난달 29일 밤 11시 34분에 처음으로 김 청장에게 전화 보고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2분 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김 청장이 이 서장을 통해 이태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됐다. 경찰청은 이튿날 오전 12시 2분이 돼서야 서울청으로부터 이태원 참사 관련 치안상황 보고를 전해받았다. 윤희근 경찰청장 역시 이 시점 전후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윤 청장은 그날 이태원 현장에 나가진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사고 경위를 파악하게 된 것은 경찰이 아닌 소방당국으로부터였다. 소방당국은 사고 당일 오후 10시 15분 첫 신고가 접수 후 38분 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대통령 국정상황실로 곧바로 보고했다. 대통령은 11시 1분 사고 사실을 보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사상자 발생 가능성을 보고 받고 오후 11시 21분 “구조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첫 지시를 내렸다. 8분 후 대변인실에 대통령 메시지가 전달되고, 오후 11시 36분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장이 이임재 서장에게 전화를 받는 그 시간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경찰 수뇌부보다 앞선 오후 11시 21분 상황을 인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29일 밤, 대통령-장관-경찰 수뇌부라는 ‘역순’으로 상황을 인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경찰 수뇌부가 사태를 늦게 파악하는 동안 수 백명의 시민들은 현장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오후 6시 35분에 접수된 신고부터 시민들은 “압사사고 나기 직전”이라면서 “소름끼치는 정도”라고 호소했지만, 일선 경찰들은 현장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하는 우를 범했다. 그 이후에도 약 10건의 신고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구조 활동은 오후 10시 15분 119에 첫 신고가 접수되면서 이뤄졌다. 신고도, 구조활동도, 보고체계도 오직 소방당국에 의해서만 작동했다.
경찰의 총체적 무능이 드러나면서 내홍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일선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발언을 두고 현직 경찰이 “지휘 책임을 일선에 돌리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태원파출소 직원 A씨는 1일 밤 경찰 내부망에 “용산경찰서 교통직원들은 현장 곳곳에서 인파들을 통제 중이었고, 몰려드는 인원이 너무 많아 안전사고 우려 신고 외 다른 신고도 처리해야 했기에 20명으론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날 이태원에 모인 인원은 10만 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경찰 수뇌부로 돌리는 수위 높은 발언도 이어갔다. A씨는 “지난달 15, 16일 진행된 이태원 지구촌축제, 이번 핼러윈 등을 앞두고 용산서에서 서울경찰청에 경찰인력 지원 요청을 했지만 윗선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청장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용산서 직원들은 무능하고 나태한 경찰관으로 낙인찍혀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며 “어떤 점을 근거로 그런 발언을 했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일선 경찰이 경찰 수장의 행보를 비판하면서 조직 내부 내홍도 커지는 모양새다.
치안 총책임자들의 경질 가능성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현장 초동 대응에 실패에 이어 수뇌부들까지 뒤늦게 사태를 인지한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이태원 참사 사고 기자회견에서 “수사결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처신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2일 이상민 장관 주재로 ‘다중밀집 인파사고 안전확보를 위한 TF’ 1차 회의를 개최했다. TF에는 행안부 재난 담당 국과장급 공무원과 서울시 안전총괄실장, 용산구 부구청장, 학계 인사들이 참여한다. 이 장관은 “관계부처와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개선방안을, 민간 전문가들은 민간 시각에서 정부 안전시스템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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