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의 성공 스토리

서울문화사 2022. 11. 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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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의 나이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정복한 김주형. 그의 성공 비결은 불굴의 의지와 긍정적인 마인드다.

2002년 월드컵둥이 김주형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로 이사를 다녔어요.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력을 길렀죠. 미국이 저의 최종 정착지가 되길 바랍니다.” 20살의 나이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정복한 김주형은 자신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다양한 경험을 꼽았다.

김주형은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태어난 ‘월드컵둥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1살 때 제주도로 이사했고 2살 때는 중국에서 살았다. 그 뒤 필리핀, 호주, 필리핀, 태국 그리고 다시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말 그대로 ‘유목민’ 같은 생활이었다. 김주형의 아버지는 호주에서 레슨 프로로 일했다. 김주형은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골프를 배웠다. 처음부터 프로골퍼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다. 골프 교습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골프와 친해졌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바꾼 건 타이거 우즈였다. 그는 “처음엔 공을 쳐서 넣는 게 재미있어서 골프를 했는데, 11살 때 타이거 우즈가 경기하는 걸 보고 프로골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골프 유목민에서 정상의 자리로

김주형의 가정환경은 풍요롭지 않았다. 2년 전 귀국했을 때다. 처음 스윙을 분석해 피팅(맞춤) 클럽을 받아 든 김주형은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주변에서 받은 클럽을 사용했다”며 “원하는 클럽을 쓰지 못하고 집 대신 차에서 생활하며 골프를 쳐왔지만,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차근차근 정복해가는 것도 내게는 골프의 재미였다”고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프로골퍼로 활약하면서도 위기에 직면했다. 2020년 아시안투어 활동을 마치고 국내로 들어오면서 매니지먼트사와 계약 문제가 불거졌는데, 위약금을 지급해야 했던 김주형의 부모는 살던 집을 팔아 해결했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환경은 김주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만 16살의 나이로 일찍 프로 무대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 만 18살부터 프로 활동이 가능하다. 골프에 소질이 있었던 김주형은 2018년 만 16살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겁 없이 내민 도전장은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아시안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2부 격인 디벨롭 투어(ADT)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ADT 투어는 환경이 열악했고 우승 상금 또한 1,000만원 안팎으로 다른 투어에 비해 적다.

2~3년 더 아마추어 생활을 하며 실력을 닦은 뒤 아시안 투어보다 큰 무대에서 데뷔할 수 있었으나 김주형의 생각은 달랐다. ADT 투어에서 1~2년 경험을 쌓으면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서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상대로 그는 1년 만에 빛을 보기 시작한다. 2019년 인도에서 열린 아시안 투어 파나소닉 오픈에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우승을 기록하며 ‘차세대 남자 골프 에이스’로 주목받았다. 이때 김주형이라는 이름을 골프 팬들에게 알렸다. 한국 남자 골프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라는 평가도 쏟아졌다. 김주형은 아시안 투어 활동에 대해 “ADT에서 보낸 1년의 세월은 내 골프 인생의 전환점이 됐고 앞으로 투어 생활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자면서도 골프 생각하는 폭주 기관차

아시안 투어에서 활동해온 김주형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국내로 들어왔다. 아시안 투어가 문을 닫게 되면서다. 그러나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에서 활약한 2년은 김주형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의 무대가 됐다. 어려서부터 그랬듯 김주형은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금세 익숙해졌다.

코리안 투어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0년 군산CC 오픈에서 프로 최연소 우승(18세 21일), 지난해에는 만 20세 이하 선수 최초로 코리안 투어 상금왕과 대상 등 주요 타이틀을 휩쓰는 역사를 썼다. 이후 다시 아시안 투어로 나간 김주형은 또 하나의 상금왕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차곡차곡 세계 랭킹을 쌓으면서 PGA 투어 대회에 추천 선수로 나가기 시작했다. 만족하지 않고 더 큰 무대로 향한 김주형은 곧바로 PGA 투어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김주형은 정해진 미래 없이 무작정 꿈을 이루기 위해 험난한 길과 마주했다. PGA 투어 회원이 아닌 김주형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선 스폰서 추천을 받거나 세계 랭킹을 끌어올려 출전권을 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기회가 많지 않았으나 김주형은 놓치지 않았다.

지난 5월 AT&T 바이런 넬슨에서 공동 17위에 오른 뒤 6월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23위를 기록하며 조금씩 PGA 투어에 적응했다. 7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은 김주형의 골프 인생을 바꿔놓은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 대회에서 3위에 올라 PGA 투어 스폰서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 뒤 치른 디오픈에서 공동 47위를 기록한 김주형은 PGA 투어 임시 회원 자격을 받아 활동 폭을 넓혔다. 비회원은 추천을 받아도 연간 최대 8개 대회만 나갈 수 있지만, 임시 회원은 제한 없이 활동할 수 있다. 임시 회원 자격을 받은 김주형은 이후 열린 PGA 투어 3개 대회에 초대받았고, 8월 정규 시즌 마지막 대회로 열린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마침내 PGA 투어 입성의 꿈을 이루었다.

김주형이 PGA 투어에서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서 습득한 다양한 경험에 있다. 중국과 태국, 필리핀, 호주 등에서 살았던 김주형은 영어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영어권 나라에서 오래 살았던 덕분에 미국에서도 언어 때문에 불편함을 겪지 않았다. 미국의 골프 팬에게 김주형은 아시아 국가에서 온 또 다른 선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김주형은 유창한 영어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거침없는 행동으로 이런 편견을 깼다. 프레지던츠컵에서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9월 열린 미국과 인터내셔널팀이 대결하는 프레지던츠컵은 전 세계 골프 팬들의 관심을 끄는 빅 이벤트다. 김주형은 인터내셔널팀 대표로 뽑혔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선수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프레지던츠컵에 처음 출전한 김주형은 예상을 깨고 미국의 강자들을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대회가 끝난 뒤 미국 골프 전문 잡지 <골프다이제스트>는 참가 선수 24명의 활약상을 평가하면서 김주형에게 인터내셔널팀 최고점인 A+를 줬다. 골프다이제스트는 “톰 김(김주형의 영어 이름)은 이번 대회 주인공이었다”며 “에너지 넘치는 흥미로운 경기로 미국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팬들에게 어필하는 능력도 있고, 이런 선수가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김주형은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경기에서 승리 후 모자를 땅바닥에 던지는 등 과격한 세리머니와 액션으로 팀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동은 PGA 투어에서 활동해온 다른 아시아 선수에게선 보지 못했던 행동으로 기량과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10일. 김주형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PGA 투어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우승,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이후 만 21세 이전에 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선수로 거듭나면서다. 이날의 우승은 타이거 우즈가 1996년 세운 기록보다 무려 6개월 3일이나 빨랐다.

“PGA 투어를 누비는 그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 PGA 투어 진출을 기대하며 땀을 흘려온 김주형은 늘 이렇게 말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을 이뤄가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김주형은 톰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 기차 장난감 ‘토마스’ 캐릭터를 좋아해 자신의 이름을 톰으로 지었다고 알려졌다. 그는 실제 기차처럼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살 김주형은 골프가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는 “자면서도 골프를 하는 꿈을 꾼다. 부모님과 대화할 때도 골프 얘기밖에 하지 않으니 내 몸엔 골프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의 바람처럼 미국은 유목민 생활을 마칠 마지막 종착지가 되고 있다.

에디터 : 김연주 | 취재 : 주영로(<이데일리> 골프 전문기자) | 사진 : CJ대한통운 제공, 김주형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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