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53% '비상경영' 모드···83%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경기 반등"
28% 비상경영 가동·25% 초읽기
인건비 절감 36%·고용 축소 14%
"투자 20% 이상 줄이겠다"도 6%
비상경영 불지핀 글로벌 경제위기
단시간 내 회복엔 대부분 회의적
# A 증권사는 증시 부진이 길어지자 최근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임원 임금과 업무추진비를 대거 줄이고 각종 판매관리비를 삭감하는 등 긴축 경영에 나서고 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 B사는 하반기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내년에 집행하려던 투자를 절반 이상 축소하기로 했다. 이 밖에 기업들마다 임직원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직원 임금까지 삭감에 나서는 등 곳곳에서 ‘허리띠 졸라매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에 따른 경영 위기로 경영전략을 다시 짜고 내년 경제 상황을 예측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서울경제가 주요 기업의 경영 위기 상황을 확인한 결과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이미 비상경영에 돌입했거나 전환하기로 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최근의 경영 위기가 내년 하반기는 돼야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기업의 투자·고용 위축이 장기화하면 이로 인한 경기 침체가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본지가 대기업 9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경영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53.5%(무응답 제외)는 이미 비상경영에 들어갔거나 앞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27.9%는 현재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한 상태이고 25.6%는 전환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비상경영에 돌입하지 않았고 계획도 없다고 한 기업은 46.5%였다.
비상경영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이 3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투자·고용 축소(14.5%), 금융 대출 또는 채권 발행(6%), 생산량 축소(3.6%)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이처럼 비상경영을 위한 방안을 세웠다는 기업은 총 50곳으로 실제 비상경영에 들어갔거나 계획하고 있는 기업 수(46곳)보다 더 많았다. 비상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의 위기에 대응해 긴축 경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이뤄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영전략에 긴급 신호가 켜진 것은 국내외 경제위기로 인한 ‘실적 쇼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응답 기업 중 연초 경영계획을 수립할 당시와 비교해 영업이익이 증가했다고 밝힌 기업은 29.9%로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70.1%는 영업이익이 예상치 수준이거나 오히려 감소했다고 답했다. 영업이익이 0~20% 줄었다는 기업은 26.4%였고 20% 이상 급감했다고 밝힌 기업도 6.9%나 됐다. 응답 기업의 23.9%는 올해 초 세운 계획보다 연간 매출이 더 줄어들 것(0~20% 감소 21.6%, 20% 이상 감소 2.3%)이라고 예상했다. 기업들이 연초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감안해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세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기업이 예년 대비 강도 높은 한파를 겪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들의 긴축 경영이 확산하면서 올해 투자·고용도 전년 대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응답 기업의 22.9%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연말까지 투자 규모가 연초 계획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20% 이상 줄이겠다고 답한 기업도 6.0%를 기록했다.
또 대기업 10곳 중 1곳(10.6%)은 연초 계획한 고용 규모를 하회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고 답했다. 9.4%는 10% 미만, 1.2%는 10% 이상 고용 규모를 줄였다고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비상경영의 원인이 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단시간 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데 있다. 기업들은 심각한 현재의 경기 상황이 반등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응답 기업 중 83.0%는 경기 반등 예상 시점으로 내년 하반기 이후를 점쳤다. 55.7%는 내년 하반기라고 답했고 2024년 이후를 예측한 응답도 27.3%에 달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해소될 것이라는 답변은 17.0%에 그쳤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정부의 조속한 대처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기업들은 정부의 시급한 과제로 환율 등 금융시장 안정화(48.9%), 규제 완화(34.1%), 미국·중국 공급망 어려움 해소(10.2%), 노동시장 개혁(6.8%) 등을 꼽았다.
김태기 단국대 명예교수는 “고금리에 따른 영향을 비롯해 경기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매출은 줄고 비용은 올라가는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고금리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에 그만큼 비용이 더 드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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