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줄 마른 보험사들 “연말이 두렵다”
내년 1월 새 국제회계제도(IFRS17)와 신지급여력( K-ICS) 비율 시행을 앞두고 보험 업계가 ‘3중고’에 빠졌다. 유례없이 빠른 금리 인상에 보유한 채권 가치가 급락중이고, 자금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추가 자본 확충 길도 막혔다. 업계는 기존 보험사 재정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과 새 회계기준을 동시에 챙기느라 분주하다.
보험사들은 내년 회계제도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작년 하반기와 올 상반기까지 대대적인 자본확충에 나섰다.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권 발행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올 하반기에도 흥국생명을 비롯한 몇몇 보험사가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준비했지만,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시장 분위기가 급변하자 자본 확충 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했다. 지금 무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모았다가 연말이나 내년께 경영 리스크가 더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는 ‘새 장부에 어떻게 반영될 지 모르니 일단 돈부터 모으고 보자’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숨고르기를 하면서 ‘눈치게임’에 들어간 모양새”라며 “자금조달이 급한 회사들이 돈을 모으고 싶어도 기관투자자 등 수요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도입되는 새 회계제도의 핵심은 보험부채 평가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미래에 지급할 보험금을 적립금으로 준비해둬야 하는데, IFRS17을 적용하면 회계를 작성할 당시 금리를 적용해 적립금을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A보험사가 과거 7%짜리 저축성보험을 팔았다면, 지금은 지급시점에 7%대 수익을 낼 것으로 가정하고 적립금을 계산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현재 금리를 기반으로 줄어드는 운용수익을 감안해 더 많은 적립금을 쌓아야 한다. 생보사들이 최근 1~2년간 저축성보험 상품 판매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단 4분기만 넘기고 보자”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4분기 RBC 비율이 금융당국 권고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는 장부상 문제일 뿐 실제 재정건전성은 탄탄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내년 새 회계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집계되는 RBC 비율은 의미가 없어진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대부분 보험사들이 몇 년간 새 회계제도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수치상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금리인상은 대부분의 생보사에 호재다. 과도기적인 상황인 만큼 4분기 수치는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생보사들의 RBC비율이 전분기 말 대비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농협생명은 올해 3분기 RBC가 전년 동기 대비 115.4%포인트 하락한 107.3%를 기록했고, DGB생명은 전년 동기보다 91%포인트 하락한 113.1%로 나타났다. 한화생명의 3분기 RBC 비율도 지난해보다 36.1%포인트 내린 157%로, 금융당국 권고치 150%를 조금 상회했다.
감독당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각 보험사로부터 IFRS17과 K-ICS 시행에 대비한 현장점검 관련 자료를 제출받고, 준비가 미진한 회사들을 찾아 현장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IFRS17 시스템 구축 현황과 시스템 검증체계 운영현황, 회계정책 수립현황, 경영진 보고 등 보험사들이 제출한 자료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일부 회사에는 보완을 지시하는 등 새 회계제도 시행후 혼란을 줄이기 위해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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