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 노동운동 시대에 안맞아 … 이젠 대화로 문제 풀어야
대담=채수환 경제부장
극단적인 노조주의서 벗어나
상생의 노동 생태계 지향해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중요
조선업서 모범 사례 만들겠다
주52시간제 개편도 당면 현안
노사에 다양한 옵션 제공할것
여가부 폐지로 고용업무 이관
여성고용정책 시너지 더 날것
매경이 만난 사람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제 '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합니다. 기업별 노동조합 중심의 과거 방식 어젠다 설정을 넘어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를 묻는 데 이같이 답하며 "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을 위해서는 파업 등 집단행동을 동원한 극단적, 전투적 노조주의에서 벗어나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985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들어가 30년이 넘는 시간을 노동운동에 쏟은 인물이다. 한국노총에서 정책본부장·중앙연구원장·사무처장 등을 거치며 '한국노총의 장자방'이라고 불렸다.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첫 번째 고용부 장관직을 맡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산업재해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SPL 평택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20대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산업재해의 심각성이 사회 전반에 다시 한번 상기되고 있다. 사망한 근로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참담한 심경이었다. 안성 물류창고 시공 현장이 붕괴되며 3명이 사망했다. 고용부는 특단의 조치로 국민적 우려가 큰 SPC그룹에 대해 강력한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을 실시하고, 위험 기계·장비를 보유한 전국 13만5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집중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염려하는 분위기도 알고 있다.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지원이 필요하다. 기업의 노력은 물론이고 제 친정인 노조의 도움도 절실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게 화두인데.
▷대표적인 '87년 체제'의 산물이다. 문제가 불거진 조선업계를 예로 들자면 지난 30년간 누적돼 발생했다. 이전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다만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일시적인 재정 투입에 집중돼 있었다. 이것이 구조적 문제를 고착화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접근법은.
▷상생·연대 모델의 구축이다. 원·하청이 자율적으로 상생·연대 방안을 마련하고 이행하면 정부가 규제 개선과 인센티브로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다. 주요 조선사와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정부,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가 이달부터 운영된다. 연말까지 조선업 표준하도급 계약서를 개선하고 내년 1월에 하도급 대금 결제조건 공시 의무화가 시행될 예정이다. 조선업에서 모범사례를 만들어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집중해야 할 때다.
―외국 인력도 역대 최다로 늘렸는데.
▷산업 전반에서 코로나19 시기에 감소했던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건설·제조·농업같이 외국 인력 비중이 높은 직종에서 인력난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지난 8월에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금년도 외국 인력 쿼터를 1만명 추가 확대했다. 다만 내년에도 현장의 구인난은 계속될 것 같다. 그래서 내년도 외국 인력 쿼터를 올해보다 4만명 증가한 11만명으로 조기 확정하고 내년 1월부터 바로 인력 부족 업종에 인력이 우선 배정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부작용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근로 환경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외국 인력 확대가 또 다른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변질되지 않도록 민감하게 살펴볼 계획이다. 다만 외국 인력 도입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 공백을 채우는 문제뿐 아니라 고령화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의 대안 측면에서도 필요한 정책이다. 내년도 외국 인력 쿼터는 내국인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현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정 규모로 정했다.
―'노동조합법' 개정 또한 뇌관인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다수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우려된다. 노조 등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한 내용은 물론이고 하청 노조가 원청과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교섭 대상을 확대하자는 내용 등이 그렇다. 노사 관계의 불안정성이 심화될 수 있다. 하청 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에 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해온 기존 대법원 법리를 바탕으로 정착된 교섭체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노사 관계에서는 균형이 기본이 돼야 한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나.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면서 현장 상황과 개인의 선택에 맞게 근로시간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현행 제도는 1953년 공장제 제조업 중심의 획일적·통제적 규제 방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틀 안에서 노사가 다양한 근로시간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부 사안은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연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추가 연장근로제가 올해 말 종료된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급격한 도입에 따른 애로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 현장 인력난 등 어려움을 고려해 민생 지원을 위한 한시적·단기적 조치로 유효기간 연장을 위한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로 고용 업무가 이관됐는데.
▷막대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기존에 두 부처로 분산돼 중복 추진됐던 여성 고용 기능을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에 따른 여성 고용 정책이 후퇴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오히려 고용 기능이 통합되면 고용정책 전문성을 바탕으로 훈련에서부터 취업, 근속까지 생애주기에 걸친 체계적인 서비스를 더 많은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진한 기자 정리]
▷ 이정식 장관은
△1961년 충북 제천 출생 △대전고 △서울대 경제학 학사 △숭실대 경영학 석사, 박사과정 수료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중앙연구원장, 사무처장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경사노위 세대간상생위원회 근로자위원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2022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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