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 한 송이 수선화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 재해석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 재해석
팰린드롬(Palindrome)을 환언하면 회문(回文)이라 한다. ‘eye’나 ‘우영우’처럼 역순으로 읽어도 같은 말이 되는 단어나 구를 뜻한다.
작가 우정수는 단어 팰린드롬에서 자기애에 갇힌 현대인 초상을 발견해냈다. 자아에서 대상으로 나아가려 해도, 처음으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것. 자기 내 폐쇄성은 때로 현대인 삶의 방편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연못에 비친 자신을 쳐다보는 고대 신화 속 인물 나르키소스를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산다.
나르키소스 이미지를 현대인 모습으로 재해석한 우정수 개인전 ‘팰린드롬’이 성북구 BB&M에서 이달 5일부터 12월 17일까지 열린다. 나르키소스의 생의 단서를 평면의 미로처럼 숨겨둔 20점의 캔버스를 미리 살피며 작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수많은 예술가가 나르키소스를 레퍼런스(참조) 삼았지만 결과는 다 달랐다. 나르키소스의 자기애적 죽음이, 그가 생명을 읽어가던 찰나가, 또 에코가 그와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수세기 동안 예술의 재료가 됐다. 이번 전시의 나르키소스는 ‘스스로 관찰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는’ 자기애적 인물이다.”
몸을 바짝 엎드려 수면에 비친 자신에게 감탄하는 나르키소스, 그를 흠모하지만 나무 뒤에 숨은 요정 에코 등의 이미지가 현대인의 내면을 겨냥하는 단서처럼 배치돼 있다. 한 송이의 수선화가 눈길을 끈다. 수선화는 신화 속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 핀 꽃이다. 우정수의 나르키소스는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수선화는 최후의 순간 이후의 절정을 떠오르게 한다.
다층적인 레이어, 반복되는 패턴도 놓칠 수 없다. 작가는 “많게는 한 캔버스에 레이어가 20겹”이라고 털어놓는다. 각 레이어는 오직 우리 눈 앞에 놓인 한 이미지를 위해 축적됐다. 스탠실로 작업한 꽃무늬 패턴도 시선을 끈다. 우정수는 “값싼 노래방이나 싸구려 술집에나 있을 법한 문양이지만 중산층을 향한 현대인 열망의 껍데기처럼 느껴져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우정수식 도상의 기원은 그리스신화뿐 아니라 중세 종교·철학서의 삽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작자 미상의 그래피티, 사변 소설의 삽화와 같은 하위문화 이미지가 한 캔버스에 어우러지며 새 감수성을 드러낸다. 고대 나르키소스 신화가 현대의 구성요소와 만나 독특한 형상을 이룬 것. 우정수의 이미지들은 이처럼 시대를 가로질러 해체되면서 그만의 리듬으로써 제자리를 찾아간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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