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콜옵션 미이행'한 흥국생명…시간벌어 준 금융당국
금융당국ㆍ기재부도 인지...콜옵션 미이행 사실상 용인
전문가 "중형급 보험사로 채권시장 영향 미미할 듯"
[이데일리 전선형 기자] 흥국생명이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중도상환(콜옵션)을 연기하면서 채권시장에 다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채권시장 경색으로 흥국생명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콜옵션 행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이 보유한 자산으로 콜옵션 행사시 건전성(RAAS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 관례적으로 해온 콜옵션 행사 연기를 용인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2일 보험 및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과 콜옵션 행사 여부 등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수요예측에 사실상 실패하면서 만기가 다가온 콜옵션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보통 금융사나 기업들은 외화 채권을 발행하기 전에 외환 및 채권 상황, 국가 신임도 등을 고려해 금융당국과 외환 당국 등에 미리 보고 하도록 돼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11월 5억 달러(당시 한화 5571억원)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기간은 30년, 금리는 연 4.475%였다. 보통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5년에 한번씩 콜옵션을 행사해 채권 리파이낸싱을 진행한다. 반드시 지켜야할 법 조항은 아니지만, 채권시장에선 콜옵션을 만기로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 관례다. 5년마다 콜옵션을 행사하면 채권 원금을 투자자들에게 되돌려준 뒤, 상품의 금리를 시장금리대로 재조정해 되파는 형식이다. 이를 통해 채권 투자자들은 금리를 올려받으면서, 투자한 회사가 얼마나 건전한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흥국생명은 콜옵션 행사 시 필요한 5억 달러를 메울 자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외화 신종자본증권 3억 달러(4100억원) 발행하고, 후순위채 1000억원을 더해 자금을 마련키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문제는 채권시장 상황이었다. 레고랜드 사고로 채권시장 수요가 줄어들고, 금리가 천정부지로 뛰면서 미매각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건전하다’는 공사채도 예외는 없었다. 흥국생명도 바로 직전인 9월에 발행한 400억원 물량의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 등의 사태가 나며 상황이 좋지 않았다. 흥국생명의 신용등급은 A+수준이며, 수요예측 당시 5.30~5.90% 고정금리를 희망밴드로 제시했지만 미매각이 났다.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을 세운 것은 이미 9월 초여서 예정대로 추진했다. 당시 계획한 외화 신종자본증권 규모는 4100억원이며, 금리는 대략 10% 수준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은 J.P모건과 노무라 증권을 대표주관사로 선정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발행은 최종적으로 연기되고 말았다.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과 관련해 태핑(수요 조사)을 진행했으나, 수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 만기가 도래해오면서 불안해진 흥국생명은 보유한 자산으로 콜옵션 자금을 해결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금융당국에서 건전성(RAAS 등)을 감안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흥국생명은 최후의 수단으로 콜옵션 행사 연기라는 방안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흥국생명 사안에 대해서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콜옵션 행사 여부 등의 결정은 회사측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콜옵션 연기는 합리적 선택”
다행히 흥국생명이 2017년 팔았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는 ‘스텝업’ 조항이 설정돼 있어 한숨을 돌렸다. 스텝업 조항은 채권발행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금리를 올려주는 것이다. 통상 만기가 긴 채권에 주로 붙는다. 흥국생명은 현재 조항에 따라 향후 6개월간 기존 금리(4.475%)에 콜옵션 만기일 이후 이자율결정기준일의 미국채 5년물에 2.472%포인트의 금리를 더해 이자율을 재설정할 예정이다. 금융당국도 스탭업 조항을 들며 콜옵션 행사 연장을 용인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여러 조건들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콜옵션 만기가 도래했고, 채권발행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등 시점이 좋지 않았다고 본다”며 “다만 흥국생명은 중형급 보험사고, 신용등급이 해외 기준으로 BBB-수준의 하위 등급이다. 해외 채권은 보통 공기관이나 금융지주들이 많이 나오는 시장이기 때문에 채권시장에 큰 파장을 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날 자료를 통해 “흥국생명은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과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상황 및 해외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며 “이에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치로 흥국생명은 신뢰를 다소 잃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크레딧업계 한 관계자는 “발행사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조기상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자본시장 내 신뢰가 저하된다는 점에서 향후 흥국생명의 자본시장 접근성이 앞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전선형 (sunnyju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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