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기자메모]
지난 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소방청장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업무보고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는 생략됐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정부의 사고 수습에 국회가 적극 협조한다는 의미에서 현안보고 내용에 대한 질의는 실시하지 않기로 위원장과 여야 간사 간 합의가 있었다”며 “지금은 추모와 애도의 기간이기 때문에 사고의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국회 차원의 논의는 정부의 사고 수습이 이루어지고 난 후 충분히 실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국민을 대신해서 질문해야 한다”며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했지만 이 위원장은 “애도 기간이 끝나면 충분히 질의할 시간을 드릴 것”이라며 거부했다. 용 의원은 “조용히 추모만 하라는 윤석열 정부에 행안위가 들러리 서는 것”이라며 “당연히 따져묻고 확인해야 할 것을 정쟁으로 몰아가면 어떡하냐”고 따지다 결국 항의의 뜻으로 퇴장했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도 질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질문 없이 정부의 일방적인 업무보고만으로 이뤄진 이날 회의는 40여분 만에 끝났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책임 추궁은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5일 이후에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1일 서울시청 합동분향소에 방문했을 당시 취재진에게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발언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라기보다 추모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2일 비대위 회의에서도 이태원 참사 발생 4시간 전 11건의 112 신고가 있었던 점을 언급하며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온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애도 기간이 끝나는 즉시 여야, 정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태원 사고 조사 특별위원회 및 당내 특위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추모의 시간’은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죽음에 대한 애도의 방식은 두 가지다. 엄숙한 태도로 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게 사적 애도라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 규명에 나서는 것은 공적 애도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할 권리가 있는 국회는 공적 애도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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