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블래스트' 이성구 대표…"버추얼 아이돌, 좋은 음악+콘텐츠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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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와 ‘기황후’ 특히 기억에 남아
前 MBC VFX팀 슈퍼바이저, 現 ‘블래스트’ 대표
‘블래스트’는 버추얼 캐릭터로 붐을 일으키겠단 의미
버추얼 아이돌그룹 ‘플레이브’ 론칭
BTS, 아이유, 싸이 프로듀싱한 엘캐피탄이 데뷔싱글 함께
“플레이브, 팬과 아티스트가 소통+함께 만드는 IP로 성장하고 싶어”
회사 창업 얼마후 24억 투자 유치
970:1 경쟁 뚫고 MBC 합격
세계적 명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졸업
의사 집안…아버지, 삼촌, 고모까지 6명이 의사
15대의 ‘필름카메라’ 소장하고 있는 사진찍기 애호가
만화 매니아…강경옥 ‘별빛 속에’는 인생 만화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각종 예능에서 다큐,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컴퓨터그래픽(CG)이 사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프로그램의 고정 타이틀 제작부터 장면 장면의 시각적 효과에 이르기까지 CG는 각 프로에 생기를 불어 넣을 뿐 아니라 리얼 촬영으론 불가능한 영역까지 소화 가능한, 무한대의 해결사다.
방송계 CG 분야에서 이성구(48)라는 이름도 '무한대 해결사', 바로 그것이다.
이성구 대표는 2002년부터 2021년까지 MBC 영상미술국(現 디자인센터) VFX팀 슈퍼바이저로 일하며 MBC의 간판 프로그램 대다수를 제작했다. 김태호라는 스타PD를 중심으로 예능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무한도전'을 필두로 하지원‧주진모 주연의 사극 '기황후', 이종석‧한효주 주연의 멜로/서스펜스 드라마 'W', 이승기‧수지 주연 '구가의 서' 등등.
이 대표는 18년 동안 근무한 MBC에서 사내벤처 1기 '블래스트(Vlast)'란 기업으로 독립한 지 얼마되지 않아 MBC와 IPX(前 라인프렌즈)로부터 24억 투자 유치를 성공시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버추얼 아이돌그룹 '플레이브'를 론칭하고 내년 1월 데뷔싱글 발매를 앞둔 이성구 대표를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서 만났다.
홍대 극동방송 인근에 있는 블래스트 사무실은 업무, 스튜디오, 미팅룸(회의실) 등 공간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처음 들어설 땐 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각 공간을 다 합치면 족히 100평은 넘는 규모다.
유명 IT/연예기획사들이 강남 쪽에 많이 몰려 있지만 블래스트는 홍대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엔 강남 쪽을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일단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임대료 부담은 물론 이 대표를 비롯해 창립 멤버들이 일산 등에 거주하고 있어 출퇴근이 쉬운 곳을 찾다 보니 홍대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회사 설립 몇 개월 만에 투자도 받고 사세 확장이 피부로 느껴지며 직원들 사기도 고무돼 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회사와 가까운 홍대 쪽으로 이사를 오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직원 수도 15명에서 35명으로 대폭 늘었다.
사내에선 사장, 부장, 대리 등의 직급 호칭 대신 각자 만든 영문 닉네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직원들은 이성구 대표에게 "대표님"이 아니라 "윌리엄"이란 닉네임으로 부른다. 임원부터 신입직원까지 동일한 라인으로 자리가 배치된 것도 눈길을 끌었다. 물론 사장실도 따로 없다. 그만큼 사내 분위기가 자유롭다. 인터뷰 중에 커피를 가져다준 것도 부대표였다.
애니메이션 전문가인 윤창희 부대표는 회사에서 뼈, (얼굴)표정 등 캐릭터 전반을 총괄한다. 윤창희 부대표는 일본의 세계적인 게임 소프트웨어 기업 '캡콤'의 한국 지사인 '캡콤코리아' 출신으로 MBC에서 이성구 대표와 함께 일했다.
이현우 CTO(최고 기술 경영자)는 게임 엔진 분야를 총괄한다. 업계에선 '언리얼 천재'로 평가받고 있는 소위 '무서운 20대' 중 하나다. 이현우 CTO는 학창 시절부터 각종 주목할만한 언리얼 아이템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현우를 비롯해 언리얼 팀이 11명이나 된다. 동종 분야에서 이 정도 규모의 언리얼 전문가를 팀으로 구성하고 있는 예는 찾기 쉽지 않을 정도다.
MBC 창사 60주년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게임 엔진으로 소통하는 좋은 예를 보여줬다. 당시 이성구 대표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게임 엔진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것이 '블래스트'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게임 그래픽으로 소통하는 미래'란 회사 비전에 걸맞게 그는 게임 엔진 기술을 광범위하게 응용해 나갈 예정이다.
'블래스트'라는 회사명은 폭발이란 뜻의 'blast'의 'b'를 'virtual'의 'v'로 바꾼 것이다. 버추얼 캐릭터로 붐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향후 블래스트가 '실시간 그래픽'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적인 면과 영화적 연출이 탁월하게 합쳐진 픽사(pixar)가 블래스트의 롤모델이죠. 픽사야말로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완벽한 합일입니다."
자이언트 스텝, 에이펀 인터랙티브 등 동종 분야 기업들도 꽤 있다. 그중 버추얼 캐릭터를 전문으로 한다는 점에선 에이펀 인터랙티브가 블래스트의 대표 경쟁업체랄 수 있다.
얼마 전에 공개한 버추얼 아이돌그룹 '플레이브'는 블래스트의 기술력과 감성이 잘 녹아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플레이브는 지난 10월 21일 저녁 홍대 버스킹을 감행했다. 공연 초반엔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공연 중간으로 접어들며 신기하다는 듯 하나 둘 모여들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플레이브' 프로젝트는 7월부터 시작해 10월에 3명의 멤버를 선공개하는 등 빠른 시간에 성과를 거두었다. 유명 웹툰 작가 '낙디'가 플레이브의 얼굴/표정을 디자인했고, 그룹 브레이브걸스 등 여러 아이돌 제작을 함께했던 모 씨가 A&R로 합류해 그간의 경험/노하우를 다채롭게 보태고 있다.
멋진 곡을 받기 위해 유명 작곡진에게도 의뢰했지만 마음에 드는 곡이 없어 고민하던 중 '엘 캐피탄'을 소개받게 됐다. 하이브 소속의 프로듀서 엘 캐피탄(장이정)은 방탄소년단(BTS), 아이유, 싸이 등 여러 TOP 가수들의 히트곡 프로듀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엘 캐피탄의 가세로 내년 1월 공개 예정인 플레이브의 데뷔싱글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술력만을 강조하는 버추얼 아이돌보단 팬과 아티스트가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IP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버추얼 아이돌을 제작하는데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팬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좋은 음악과 콘텐츠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성구 대표는 '사업가'라기 보다 '전문 엔지니어'로서의 면모가 강해 보였다. 마치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는 테스트를 거쳐 가는 엔지니어의 그것처럼 어투에서 결코 조금의 과장도 없는, 양념을 거의 하지 않은 꾸밈없는 어법이었다. 회사 대표/사업가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바로 이러한 게 그만의 강점이자 매력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성구 대표는 1974년 인천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남1녀 중 맏이로 여동생은 연세대(불문학) 졸업 후 현재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다.
이 대표 패밀리는 아버지뿐 아니라 삼촌, 고모에 이르기까지 의사가 무려 6명이나 되고 조카들도 의대에 재학 중일 만큼 흔치 않은 '의사 집안'이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흔히 말하는 "공부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아들이 좋아하는 걸 하며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버지는 대입 즈음, 한국이 학연을 중시하는 사회다 보니 아들이 연세대에서 서강대까진 가주길 바랐다. 결국 서강대(사학)에 입학했지만 1년 반 정도 다니다가 자퇴했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98년 세계적 명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 입학한다.
당시 이성구 대표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과 함께 칼아츠, 뉴욕대, 시카고 아트스쿨 등 5개 학교에 지원했는데 모두 합격 통지받았다. 공교롭게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재학 중 한국은 IMF 사태가 벌어졌다. 학비와 생활비가 연간 1억 이상이 드는 만큼 부모에게 지원받는게 미안해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할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 대표는 마음을 다듬게 됐다. 약간의 생활비라도 벌어보고자 현지에서 맥도날드 '알바'까지 했다.
이 대표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대학원까지 마치려 했으나 학비 등 제반 여건으로 인해 학사 과정만 마치고 귀국하게 된다.
귀국과 동시에 MBC 공채(컴퓨터그래픽)에 지원했다. 1명만 채용하는 이 시험에 무려 970명의 지원자가 몰렸는데, 그는 97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것이다.
MBC에 근무하며 '무한도전'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던 중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다룬 판타지 무협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계기로 MBC 내부에서 CG 등을 자체 제작할 때가 됐다는 의견이 공론화되기에 이른다. 그는 사극 '선덕여왕'으로 VFX 전문가 정길상과 첫 호흡을 맞췄다.
MBC 시절에 관여했던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이성구 대표가 특히 애착이 가거나 자신의 스타일/역량이 잘 발휘된 작품으로 'W'를 꼽았다. W가 카툰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을 잘 구현했다는 게 이유다. 드라마 W는 이종석‧한효주라는 빅스타 주연, 그리고 드라마 사상 획기적인 시도로 매회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음에도 평균 시청률이 10%대라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다. 이 대표는 'W'와 함께 '기황후'도 기억에 남는 드라마로 꼽았다.
"'기황후'는 중국 현지 로케로 제작된 만큼 한참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외국에서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도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이성구 대표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1 때부터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는 그에게 또 다른 애니의 세계에 눈을 뜨게 했다.
"애니메이션에선 거의 대부분 악역이 있어 긴장감 어린 스토리텔링이 이어지는 것인데, '이웃집 토토로'엔 악역이 없으면서도 재미를 비롯한 모든 게 탁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순정만화부터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즐겼다. 순정만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강경옥 '별빛 속에'는 현재까지도 그의 인생 만화로 남아있다.
이성구 대표는 MBC 재직 중 후배 직원이 자신의 누나를 소개해 줘 2010년 결혼해 현재 아들 하나(중2)를 두고 있다.
15~20년째 필름 사진찍기를 취미 생활로 즐긴다. 길거리 풍경 찍는 걸 좋아한다고. 라이카, 아사히펜탁스 등 다양한 브랜드의 기계식 카메라를 15대나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술, 담배는 '공식적으론' 하지 않는다.
이성구 대표는 인스트루멘틀 계열의 음악을 선호한다. 존 스코필드 'Uberjam' 앨범을 가장 좋아한다고.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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