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 조달 ‘비상등’···콜옵션 행사, DB생명 300억  연기, 흥국생명 5억달러 미행사

박채영 기자 2022. 11. 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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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사들이 잇달아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미루거나 미행사하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30년만기로 발행되지만 5년째 발행사가 되사들일 것으로 금융사들이 기대하는 상품이다. 발행사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말은 발행사가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거나 시장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콜옵션 미행사는 금융위기 당시던 2009년이 마지막이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금융사들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평판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DB생명은 오는 13일로 예정되어 있던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 2017년에 발행한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인데, 최근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해 투자자들과 협의을 거쳐 콜옵션 행사일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DB생명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미리 투자자들과 협의했고, 계약 자체를 변경해서 콜옵션 날짜를 내년 5월로 바꿨다”며 “투자자들과 합의하에 계약을 변경한만큼 금융시장 신뢰에 영향을 줄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날 흥국생명의 경우 11월9일로 예정돼 있던 5억 달러(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미행사하기로 했다. 앞서 흥국생명은 2017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오는 9일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었다. 흥국생명은 콜옵션 행사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 수요예측을 준비했으나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것을 고려해 발행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던 2017년보다 금리와 환율이 오른 것을 고려한 선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콜옵션이 있는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발행사가 조기상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금융시장은 콜옵션 행사를 관행으로 여겨왔다. 때문에 콜옵션 미행사가 반복되면 국내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평판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금융기관이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미행사한 것은 2009년 우리은행이 마지막이다.

정원하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이날 리포트를 통해 “콜옵션 행사가 발행사의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자본시장 내 신뢰가 저하된다는 점에서 향후 회사의 자본시장 접근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연구원은 “실제 2009년 우리은행이 외화 후순위채에 대한 조기상환을 시행하지 않아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이 급격히 상승하는 등 자본시장 내 평판이 악화됐으며, 나아가 한국 채권에 대한 해외 투자 심리가 저하됐다”고 덧붙였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조기상환 미행사가 디폴트(부도)는 아니지만, 평판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라며 “콜옵션 날짜를 실질적 만기로 인식했던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가 KP(한국계 외화채권) 투자심리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에 대해 “금융위,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등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해서 소통해왔다”며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시장 일각에서는 신종자본증권 상환이 계속 미뤄지면 파생상품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자금 경색이 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와 투자자들은 통상 신종자본증권이 5년 뒤 상환될 것이라 생각하고 각종 파상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며 “상환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판매 금융사가 떠안게되고 지금처럼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자금계획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종자본증권: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통상 30년 이상으로 긴 채권을 말한다. 신종자본증권은 채권과 달리 자본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을 하면서도 부채비율은 높아지지 않는다. 다만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5년 정도에 콜옵션을 부여해 발행사가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해놨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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