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방금지법 논란] ④ 소비자불신 가득…한공협 vs 프롭테크 싸움 아닌 투명성·신뢰성
[아이뉴스24 이혜진 기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에 부동산 시장 관리·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직방금지법)을 두고 한공협과 일부 프롭테크(부동산+기술) 기업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선 투명성과 신뢰성이 녹아든 부동산 매물정보를 제공하면 양측이 주도권 다툼을 하지 않아도 중개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부동산 컨설팅 회사 존스랑라살과 투자사인 라살자산운용은 최근 '국가별 부동산 투명성 지수 순위(GRETI)'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한국 부동산 시장 종사자의 전문성 부족과 서비스 불투명성이 소비자 만족도와 업계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올해 GRETI는 98개국 중 28위로 국가 경제 수준(지난해 기준 GDP 10위)을 감안하면 낮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신뢰와 만족도, 시장의 투명성을 부동산 산업의 근간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부동산 매물 가격 및 수수료 담합, 허위 매물 등 관련 문제는 반복돼 왔다. 그러면서 2010년부턴 허위 매물을 없애 부동산 거래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프롭테크 기업이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9월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터넷상 부동산 부실 광고는 전년 동기보다 되레 늘어났다.
이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국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가중됐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자가 허위 매물 광고 내용을 시세 파악 등 자신의 의사결정에 활용하면 시장분석 오류의 불이익이 발생한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며 국내 부동산 거래 시장에서 가격 왜곡 현상이 발생해 시장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에선 상대적으로 높은 소비자 신뢰에 기반해 시장을 선도하는 부동산 정보 공급자가 등장했다. '미국판 직방'인 프롭테크 기업 질로우(Zillow)가 대표적이다.
이날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국토 면적이 넓고 주택의 규모와 형태가 다양해 특정 주택의 적정한 가격을 파악하는 것이 부동산 수요자의 최대 관심사"라며 "질로우는 이들에게 믿을 수 있는 집값 정보를 제공해 부동산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평판을 바탕으로 질로우는 단기간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했다. 지난 3월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미국 부동산 수요자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취득 비중은 95%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정보는 질로우로부터 취득됐다. 앞서 NAR이 발간한 보고서를 종합하면 질로우가 창립되기 전인 2004년엔 관련 비중이 15%에 그쳤다. 그런데 정보의 신뢰도가 높은 플랫폼이 등장하자 부동산 시장의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이에 최근 NAR은 한공협과 달리 자국 프롭테크 1위 기업과 담합했다는 의혹에도 해당 업체의 플랫폼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최근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질로우와 NAR이 관련 스타트업(신생 기업)인 렉스로부터 반독점 관행을 이유로 소송당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양측이 NAR 소속이 아닌 부동산 중개사의 정보를 질로우 사이트에서 고의적으로 숨겼단 혐의다.
업계에 따르면 해외에서도 프롭테크를 포함한 플랫폼 기업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규제는 알고리즘과 수요자 개인정보에 관한 측면을 제외하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련 기업이 국내보다 수요자로부터 신뢰를 얻은 이유는 플랫폼의 어떤 기능에 더 집중했느냐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부동산 플랫폼은 거래 정보를 유통하는 기능에 집중하기보다 사실상 중개업소 광고용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에 플랫폼 등장 이전부터 발생해 온 수요자·공급자와 중개인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프롭테크 기업 설립 이후에도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최근 발의된 직방금지법처럼 한공협에만 부동산 시장을 견제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협회를 사실상 치외법권에 둘 것이 아니라 부동산거래감독원과 같은 제3의 감독기관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는 8일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할 것으로 알려진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의 적용 대상을 프롭테크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법안의 적용 대상은 총 판매금이 3조원 이상인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에 한정될 전망이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수요자의 편의성 등을 이유로 각 분야의 서비스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모이고 있는데 프롭테크 등 특정 업종만 제외하면 되겠느냐"며 "각 분야의 플랫폼이 관련 법의 적용 대상이 돼야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hjlee@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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