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 불발··· 흥국생명, 고금리 피하려 연장 선택

손진석 기자 2022. 11. 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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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

자산 기준 생명보험업계 8위 흥국생명이 달러화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형식상 만기가 없어 자본으로 인정받는 채권)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조기 상환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내 금융회사가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을 하지 않은 것은 2009년 우리은행 이후 13년 만이다.

새로 자금을 끌어와 기존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금리 상황이라 이례적으로 상환 대신 연장을 택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불문율로 통하는 조기 상환이 불발될 정도로 시장이 위축됐다는 뜻이다.

지난 1일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 연 4.475%의 금리에 5억달러(약 7090억원) 규모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오는 9일까지 조기 상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새로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권을 찍어 기존 5억달러를 상환하는 것을 미룬 것이다. 이럴 경우 기존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6개월 뒤 다시 조기 상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흥국생명은 조기 상환보다 연장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연장할 경우 계약 조건에 따라 연 6%대 금리를 지급하면 되지만, 최근 금리가 급등해 새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려면 연 12% 안팎의 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시장 신뢰도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고금리 부담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흥국생명이 현재 시장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이 크게 흔들린 것처럼 작은 변수도 투자 심리에 충격을 줄 수 있어 불안감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은 2009년 우리은행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2009년 우리은행 사태 당시는 금리 하락기였고, 조기 상환을 하는 것이 유리했는데도 불구하고 연장을 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준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또 연내에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만기가 돌아오는 다른 보험사는 없기 때문에 연쇄적인 파장을 낳을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의 수익성과 관련한 경영 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보험사의 자산 건전성을 보여주는 위험기준자기자본(RBC) 비율이 지난 6월 말 157.8%로 금융 당국 권고치(150%)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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