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조각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최소한 재료만 사용해
사라지는 작품들 제작
존재 근원에 대한 성찰
12월 3일까지 아트스페이스3
"내가 만든 작품을 모두 다 남겨야 하느냐는 고민이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에서 개인전 '더 적게(Lesser)'를 시작한 박미화 작가(65)는 사뭇 비장했다.
삶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휴머니즘적 작업을 도예, 회화, 설치 등 다양하게 선보여 온 그는 2019년 박수근미술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고민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작업이 삶 그 자체인 작가는 지구상에 더 적은 흔적을 남기겠다는 결심으로 최소한의 재료를 소비하고 작품 부피도 최소화하는 예술적 실천을 보여줬다.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된 작품의 4분의 3가량은 팔 수 없다니 파격이다. 기후변화와 전쟁 등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맞이하는 작품 '지성소(Sanctuary)'의 흙 조각 11점은 젖은 흙을 성형하고 그대로 서서히 말려 '날것' 그대로의 질감을 전달한다. 불에 굽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전시 후 흙으로 돌아간다.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이름과는 달리 문명의 폐허를 연상시킨다. 떨어져 나간 기둥, 몸통상, 동물상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상처받은 인간을 상징하듯 얼굴상은 옆으로 뉘어졌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하나의 제스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라 과정이 중요했다. 갤러리 측이 이해해줘 뜻을 펼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시장 안쪽 대형 벽화 작품 '이름(The Names, 2020~2022년)'은 마치 벽에 박아넣은 비석들처럼 엄숙하다. 작가가 오랜 기간 스크랩해둔 신문지 360장을 붙여 만들었다. 작가는 2017년 '이름' 연작을 처음 시도했다. 삶을 아쉽게 떠나 보낸 존재들의 이름을 하루에 한 개씩 마치 일기처럼 작은 패널에 새겨넣는 작업이다. 처음엔 나무판에, 이후 천에 자수로 새기던 것을 이번엔 인간사가 활자화된 신문지 위에 옅은 물감을 칠하고 연필과 커터칼로 글을 새겨넣고 내용을 중첩해서 그 의미를 배가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라진 존재를 기리고 기념한다.
'코로나로/생활고에 시달리다가/자살한 사람들/최소 22명/2020-2021' '윤주/8/소풍가고 싶었는데/엄마는 주먹으로 때리고/발로 걷어찼다. 부러진 뼈가/폐를 찔러 숨졌다/가을/2013' '이기방/동자동 쪽방/반전 없는 죽음/2020' 등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울컥하게 된다. 최근 잇따른 참사를 겪으며 작가는 또 이런 작업을 일기 쓰듯 하고 있을 것만 같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일상과 작업이 일치하는 작가는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의 희생양에 관심이 많아 작업을 통해 희생양을 기리고 기념하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작가는 '천사 2'에서 나무가 타고 남은 재를 이용해서 그려 물질의 순환을 드러내는 작업 방식도 선보였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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