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벼락스타 된 76세 은둔 작가
사촌 다락방에 살던 무명 작가
매튜 웡과의 우정이 알려지며
돌연 스타로 부상해 20억 돌파
마술적 리얼리즘 풍경화 인기
‘21세기 마그리트’라는 평가도
불과 3년 전, 스콧 칸(Scott Kahn·67)은 사촌의 다락방에서 살았습니다. 반세기를 그림에 매달린 깡마른 노화가의 그림은 단돈 5000달러에 불과했죠.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 출신 화가는 평생을 무명으로 살았습니다.
지난 5월 뉴욕 알민 레쉬(Almine Rech) 갤러리에서 열린 칸의 개인전 ‘벽이 있는 도시(The Walled City)’에는 15점이 전시됐습니다. 1988년부터 올해까지 그린 작품은 29만~100만 달러의 가격표를 달고 있었죠. “내가 아직 살아있기에 경험한 놀랍고도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전시를 마친 작가의 소회입니다.
칸은 그야말로 코로나19 시대의 벼락스타입니다. 아시아의 컬렉터들은 고독한 인물과 사물을 묘사한 그의 꿈같은 풍경화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전설의 시작은 2021년 11월 홍콩 폴리옥션과 필립스가 진행한 경매에서 2002년작 풍경화 ‘Cadman Plaza’가 시작가의 7배를 넘는 가격인 약13억7000만원에 팔린 것입니다. 불과 2년 전까진 경매에 출품된 적도 없는 작가는 신기록 행진 중입니다. 지난 5월에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2012년작 ‘Big House, Homage to America’가 약 20억원에 팔리며 시작가의 10배를 뛰어넘는 기록 경신을 했습니다. 금융시장 불안 속에 열린 지난 13일 크리스티 런던 이브닝 경매에서도 붉은 구름이 떠 있는 풍경화 ‘Croquet’(1992년작)이 약79만파운드(13억원)에 팔리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은둔 작가’였던 칸이 미술 시장의 주인공이 된 사연은 후배와의 우정 덕분입니다. 몇 년 전, 그는 캐나다의 스타작가 매튜 웡과 페이스북으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칸은 뉴욕에, 왕은 에드먼턴에 있는 물리적 거리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둘은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둘 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자연과 미술적 리얼리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웡은 전통적인 아시아 수묵화와 서양의 추상표현주의를 결합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칸은 웡의 그림이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뉴욕 브루클린 작업실로 그를 초대했습니다. 웡은 자신이 영감을 받은 칸의 작품 ‘Cul de Sac’(2017년)을 사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이후 갤러리와 큰 손 컬렉터들이 칸의 작업실로 달려갔습니다.
2019년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웡의 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치솟아 480만달러(68억원)에 경매에서 낙찰되기에 이릅니다. 웡을 싹쓸이하던 아시아 컬렉터들은 이제는 칸의 작품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작년 알민 레쉬 파리의 개인전은 칸의 대관식이 됐습니다.
칸은 1960년대 마크 로스코 등 1세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를 만나면서 추상화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술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고 추상화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추상화를 완전히 포기했죠. 그는 롱아일랜드로 이주해 4년을 은둔하며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를 독학했습니다. 이 시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회고하며 자신을 독학 예술가라고 말합니다. 뉴욕으로 돌아와 창문에서 보이던 아름다운 풍광이 보이지 않자 그는 상상력, 꿈, 기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명상적인 요소마저 있는 그의 그림은 미묘한 형태의 자서전입니다.
“저는 제 작품을 제 삶의 기록이자 시각적인 일기라고 생각합니다.”
칸의 회화는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감정을 선사하고 섬세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매우 느리게 작업하는 화가입니다. 웡의 방문 이후 작업실에 쌓여있던 그림은 모두 소진됐습니다. 2021년 뉴욕에서 칸의 개인전을 연 하퍼 레빈은 “위대한 그림이 마침내 승리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마그리트다”라고 말했습니다.
칸의 인생역전을 보면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생각납니다. 단 한 사람의 관심이 한 예술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는 소설이죠. 칸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아무도 제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난 내 사촌의 다락방에서 가난하게 죽을 줄 알았어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리고 매튜가 나타났습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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