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주최자 없는 핼러윈’은 한국과 달랐다 [이슈픽]

권윤희 2022. 11. 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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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시간) 홍콩 최대 번화가인 란콰이퐁에서 현지 경찰이 핼러윈 축제 인파를 통제하고 있다. 2022.10.31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에서도 ‘주최자 없는’ 핼러윈 축제가 열렸지만 한국과 달리 인명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됐다. 29년 전 압사 사고 후 마련된 인파 관리 매뉴얼이 제 역할을 한 걸로 보인다.

5년째 홍콩에 거주 중인 교민 이정민씨는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현지 핼러윈 분위기와 경찰의 인파 대응 방식에 대해 전했다.

매년 홍콩 최대 번화가 란콰이퐁에서 열리는 핼러윈 축제에 3번 이상 다녀왔다는 이씨는 경사진 골목과 계단이 많은 번화가라는 점에서 란콰이퐁과 이태원은 매우 흡사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술집과 식당이 매우 많다는 점에서 란콰이퐁과 이태원은 비슷하다. 특히 핼러윈 같은 때 축제를 위해 사람들이 모두 몰려 바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란콰이퐁과 이태원은 경찰의 인파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이씨는 “란콰이퐁 핼러윈 축제는 경찰이 주도하는 느낌이 있다”며 “란콰이펑 상인회와 경찰이 연계해서 (축제를) 미리 계획한다”고 했다. 이어 “경찰, 정부 웹사이트에서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차량 접근과 집합을 금지한다고 미리 안내한다”고 덧붙였다.

● 인파와 나란히 일방통행 유도, 홍콩 경찰의 매뉴얼

핼러윈 같은 큰 축제가 있을 때 홍콩 경찰은 인파와 나란히 걸으며 일방통행을 유도한다. 골목을 막고 일렬로 줄지어 인파 선두를 지키며 공간을 벌리고 동선과 속도를 조절한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이씨에 따르면 핼러윈 같은 큰 축제가 있을 때 홍콩 경찰은 인파와 나란히 걸으며 일방통행을 유도한다. 골목을 막고 일렬로 줄지어 인파 선두를 지키며 공간을 벌리고 동선과 속도를 조절한다. 또 15~20분마다 입구를 열고 들어가는 사람 수와 나가는 사람 수를 확인하며 인파를 적정 규모로 유지한다.

이씨는 “가장 놀란 부분”이라며 “일방통행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입출구를 통제한다. 그래서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없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꽉꽉 메워서 일방통행을 하는 와중에도 도로에 구급차나 다른 응급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씨는 “처음 봤을 땐 불편한 거 아닌가, 축제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통제를 순조롭게 잘 따르고 안전사고가 없는 것을 보면서 중요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접한 홍콩 시민들도 현지 경찰의 통제를 믿고 축제를 즐겼다.

● 경찰 믿고 핼러윈 즐긴 홍콩 시민들

31일(현지시간) 홍콩 최대 번화가인 란콰이퐁에 몰린 핼러윈 인파. 경찰 통제 속에 축제를 즐기고 있다. 2022.10.31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주말 란콰이퐁을 찾은 레이첼(31)은 서울에서 비극이 벌어지긴 했지만 핼러윈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며 “홍콩 경찰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매우 잘 조직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행사는 잘 통제된다고 믿고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 경찰은 “서울 참사 이후 취한 특별 조치가 아니라 예년과 유사한 평소 행사 통제 매뉴얼”이라며 “우리는 수년간 란콰이퐁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대응해 온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란콰이퐁 상인 협회장은 “경찰은 자신들이 정한 최대 운집 인원 선을 넘어가면 더 이상 사람들이 란콰이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인파 통제 공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1993년 비극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란콰이퐁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1993년 새해 전야 란콰이퐁에선 21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치는 압사 사고가 있었다. 이후 현지 경찰은 통제 매뉴얼에 따라 안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주최자 없는 집단행사 안전관리 대책 미흡

2일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2022.11.2 연합뉴스

29년 전 참사 후 대응 매뉴얼을 마련한 홍콩과 달리, 우리나라는 주최자 없는 집단행사를 위한 안전관리 대책이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현행 재난안전관리법은 66조의 11에 ‘지역 축제를 개최하려는 자’가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사전 통보하고, 안전 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안전관리계획 수립의 주체가 ‘지역 축제를 개최하려는 자’로 돼 있어 핼러윈, 크리스마스 같은 자발적 행사는 관리 책임의 주체가 없는 사각지대가 된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경우도 10만명 이상이 몰릴 것이 예상됐지만 개최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인파가 몰린 축제라는 이유로 매뉴얼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국민의힘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 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재난안전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고 예방 안전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 데 따라 입법 보완에 나선 것이다.

행정안전부도 다중 인파사고 안전확보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주최 없는 행사의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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