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흥국생명 5억弗 영구채 콜옵션 연기···외화채권 투심 얼어붙나
■ 기업 달러채 발행 비상등
레고랜드 사태로 조달환경 악화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 미행사
우리은행 이후 13년만에 처음
한화생명 채권값 하락에도 영향
내년 만기 외화채 250억弗 달해
당국 "사전 협의" 불구 영향 주시
흥국생명보험이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조기 상환(콜옵션)에 실패해 외화채권 발행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조기 상환에 실패한 것은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처음이다.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는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아니지만 국내외 투자자들은 조기 상환을 염두에 두고 투자해온 만큼 한국 기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적잖이 훼손할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투자 업계는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한국 기업들의 외화채권 규모가 약 250억 달러(약 35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전날 싱가포르거래소를 통해 9일 예정된 5억 달러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흥국생명은 콜옵션 행사에 대비해 지난달 말 5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려 했으나 국내외 자본시장이 얼어붙어 외화채 발행 계획 등을 접었다.
흥국생명이 조기 상환에 실패한 5억 달러의 영구채는 2017년 11월(연 4.475%) 발행됐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조기 상환일은 발행일로부터 5년 후로 이달 9일 첫 기일이 도래한다. 발행 시 맺은 스텝업 조항에 따라 조기 상환을 못한 흥국생명의 영구채 금리는 5년물 미 국고채에 2.472%의 가산금리가 붙어 약 6.72%로 치솟게 된다.
흥국생명은 국내외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히 경색돼 영구채의 차환 발행이 무산됐고 자기자본을 활용해 채권을 상환할 만큼 재무 여건도 좋지 않아 고금리를 부담하기로 한 셈이다. 올 6월 말 기준 흥국생명의 지급여력(RBC) 비율은 국내 생보사 중 가장 낮은 157.8%로 금융 당국의 권고치(150%)를 간신히 넘겼다.
외화 채권 발행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흥국생명이 영구채 조기 상환에 실패하자 달러 자금 조달을 준비하던 한국투자증권 역시 외화채권 발행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아울러 호주달러채 발행을 준비 중인 신한은행과 글로벌 투자자를 상대로 채권 투자 수요를 확인 중인 하나은행의 상황도 만만치 않게 됐다.
흥국생명은 다음 조기 상환 기일인 내년 2월 7일을 건너뛰고 5월 7일께 다시 채권을 발행해 5억 달러의 영구채를 상환할 계획이다. 현행 RBC제도가 올해 일몰되고 내년부터는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돼 보험사들이 보유한 채권의 평가이익을 재평가해 자산 건전성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채권 매각도 어려워지고 특히 연말이 다가오면서 투자자들이 줄어 금리보다는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흥국생명도 올해까지만 RBC 비율을 사수하면 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콜옵션을 포기하고 고금리를 감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외화채의 조기 상환을 미루면서 흥국생명은 물론 한국 기업들의 향후 외화 조달에는 빨간불이 켜지게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조기 상환을 실시하지 않은 것은 2009년 우리은행의 달러화 후순위채 이후 처음이다. 우리은행이 당시 조기 상환에 실패하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의 외환 사정에 대한 우려로 투자자들의 대거 이탈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도 후순위채를 스텝업 금리보다 높은 일반 채권으로 바꿔주면서 시장을 달랜 바 있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채권 조기 상환 미행사로 자본시장 내 신뢰가 떨어져 향후 시장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추후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채 시장에서 자본성 증권을 발행하는 데 대한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발표 후 흥국생명은 물론 내년 4월 23일 콜옵션 만기를 앞둔 10억 달러 규모의 한화생명 신종자본증권까지 유통시장에서 가격이 급락했다. 이날 기준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의 액면가 100달러 채권은 각각 84.9달러와 97.6달러로 가격이 떨어져 거래 중이다. 한화생명은 영구채 조기 상환을 위해 지난달까지 1조 원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검토했으나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발행 계획을 내년으로 잠정 연기했다. KDB생명과 신한금융지주 역시 내년 5월과 8월 각각 2억 달러와 5억 달러의 영구채 첫 상환일이 도래한다. 아울러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기업들의 외화채권은 약 250억 달러로 올해보다 22%가량 많다. 한화생명은 이에 대해 “시장 상황에 따라 외화채 발행을 다시 검토할 것”이라며 “기존 발행한 10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은 내년 4월 계획대로 상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금융 당국은 흥국생명의 영구채 콜옵션 미행사 결정에 대해 사전에 회사 측과 협의가 있었다고 밝히면서도 시장에 미칠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자칫 가까스로 레고랜드라는 큰불을 잡은 국내 채권시장에 ‘자기실현적 위기’가 재발할까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흥국생명이 조기 상환을 위한 자금 상황 및 해외 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채권 발행 당시의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 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흥국생명 역시 콜옵션 미행사에 대해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과 사전에 충분히 소통을 했고 사후에도 시장에 진행 상황을 소상히 알리겠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은 디폴트가 아닌 만큼 추후 한국물(해외 금융시장에서 발행한 외화 표시 채권) 발행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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