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는 대체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의 문자, 유지·발전시켜야”[인터뷰]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소리와 함께 사용하는 언어다. 한글 점자는 1926년 11월 4일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 반포한 ‘훈맹정음’을 토대로 꾸준히 발전해왔다. 정부는 11월 4일을 점자의 날로 정해 놓고 있다.
각종 편의시설과 공공시설에 적용된 점자 표지판이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돕는다면, 점자도서를 통해 지식을 쌓고 다양한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점역사는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일반도서를 점자로 번역해 점자도서를 만든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11년 차 점역사 이길원 점역팀장(38)을 만났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씨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대상 스페인어 회화 교실의 강의를 맡게 되면서 점자를 처음 접했다. 그는 취업 전까지 점역사라는 직업도 시각장애인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지만 흥미를 갖게 되면서 점역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씨는 국내 유일의 스페인어 점역사다.
최근 10년 내 만들어진 스페인어 관련 점자도서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2018 수능 때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선택한 맹학교 학생이 있어서 스페인어 시험문제 점역 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시각장애 학생들의 경우 아직도 본인이 원하는 과목의 점역사가 없는 경우 시험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지난 5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점역교정사 자격증 소지자는 모두 1395명이다. 이중 국어를 포함해 수학·과학·컴퓨터·음악·일본어·영어 등이 가능한 점역사는 약 361명이다.
이씨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독서권 보장과 폭넓은 진로 선택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도서가 제공돼야 하는데 제2외국어나 이공·상경계열 점역사는 늘 부족한 실정”이라며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점역사들이 일할 수 있는 기관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이씨는 시각장애인용 도서에 대한 출판사의 무관심도 점자도서 제작을 더디게 한다고 말했다. 점자도서는 시각장애인이 신청한 도서를 구입 해 한 장씩 스캔해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로 추출하거나 사람이 직접 타이핑을 한다. 1차 교열을 본 텍스트 파일은 점자로 제작해 시각장애인 교정사와 함께 검수한 뒤 점자 프린트로 출력해 책의 형태로 제본한다. 그래프나 도표, 수식이 있는 제2외국어나 수학, 과학, 음악 등 특수과목은 점역사가 점자를 일일이 손으로 찍어 제작한다.
제작 기간은 책 두께와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소설책은 1~2주, 대학 전공서적은 1~2개월, 제2외국어 원서나 수식과 도표가 많은 이공·상경계열 전공도서는 2~3개월 정도 걸린다.
이씨는 “출판사에서 텍스트 파일을 받으면 제작 기간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지만 대형 출판사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미흡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법 제20조(도서관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디지털 파일 형태로도 납본하여야 한다)에 따라 각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전자 자료를 시각장애인용 도서 변환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출판사는 저작권을 이유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본인이 개발한 교재의 저작권을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교수도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개강 전에 어렵게 자료를 구해 점역을 의뢰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대학교재는 작업하는데 오래 걸려 일정에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각장애 학생들의 공부보다 우선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는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점자를 들여다보면 공중화장실의 남녀 표시가 반대로 붙어 있거나 점자의 위아래가 뒤집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붙이는 사람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비시각장애인도 쉽게 점자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점자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잘못된 점자를 발견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점자 타자연습 프로그램도 개발해 아프리카 개발 도상국에 있는 맹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씨는 “최근에는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전자도서 이용자가 늘면서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습득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문자인 만큼 계속해서 점자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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