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66>대덕연구학원도시 국가사업
대통령 보고회 열흘 후인 1973년 5월 28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처가 작성한 연구학원도시(현 대덕연구개발특구) 건설 계획을 재가(裁可)했다. 사업은 마침내 국가계획사업으로 확정됐다. 과학기술처는 재가에 앞서 같은 해 5월 18일 대통령 보고회에서 국무총리를 비롯한 참석자가 제시한 의견을 반영한 연구학원도시 건설 계획을 다시 작성했다. 주무국장인 권원기 당시 과학기술처 종합계획관(전 과학기술처 차관)의 회고. “청와대 회의가 끝나자 사업을 공식화하기 위해 부처 장관들 의견을 반영한 연구학원도시 건설 계획을 다시 작성했다. 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과학기술처는 새로 작성한 건설 계획안에 대해 5월 21일 최형섭 장관 결재를 받고 이튿날인 5월 22일 건설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 협조 서명을 받았다. 이어 김종필 국무총리 결재를 거쳐 청와대에 대통령 재가를 요청했다.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의 회고록 증언. “연구학원도시 건설은 연구원 상호 접촉 기회를 확대해 지적 교류를 증대하고 다른 분야 간 협동연구시설 공동 활용과 과학기술 정보의 신속한 교환 등 연구기관 집단화 장점을 갖추도록 해 과학기술 개발과 투자 효율화를 도모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박정희 대통령은 연구학원도시 건설 계획을 재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연구학원도시 건설은 국가계획사업으로 추진한다. △연구학원도시 건설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다음과 같이 조치한다. 첫째, 건설에 관한 관계 부처 업무 조정은 국무총리실에서 담당한다. 둘째, 건설지역은 충남 대덕군(유성면, 탄동면, 구축면)으로 확정한다. 셋째, 계획 수립과 건설은 내무부와 건설부 협조 아래 과학기술처가 주관해 추진한다. 넷째, 건설본부를 과학기술처에 설치하고 이에 필요한 법령을 제정한다. 다섯째, 도시 건설 지역을 확정하면 그 지역과 인근 주변 일대 지가 고시 조치는 건설부가 담당한다. 여섯째, 경제기획원은 사업 규모와 건설에 따른 예산을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친 후 결정토록 한다. 확인 행정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 지시는 구체적이었고 부처 간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다.
대통령 비서실도 대통령 지시 후 연구학원도시 건설에 대한 조치 사항을 정리해 경제1 수석비서관을 거쳐 대통령비서실장 결재를 받았다. 이 조치는 청와대 수석 간 업무 분담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수석 간 업무 역할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업무 혼선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연구학원도시 건설 지역을 대덕으로 확정하자 명칭도 대덕연구학원도시로 변경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념=두뇌 도시이며 과학 공원도시로 연구와 학문을 생활화하는 도시로 건설한다. △기본 방향=연구소를 핵으로 하는 도시체계를 형성하며 대전과 상호 보완적인 도시개발 체계를 갖춘다. 농지와 기타 생산녹지를 최대한 확보해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현지 주민을 보호하며 기존 마을은 개량한다. △건설 기간=1974년~1981년(8년간) △면적=810만평(도시 시설지, 생산녹지, 산림녹지, 개발제한 구역, 유보 지역 포함) △인구=5만명 △입주 계열=전자 전기계, 선박 해양계, 기계계, 석유화학계, 건설계, 식품 보건계, 농수산계, 공동이용계 △교육시설=대학교(충남대), 중·고교 5개, 초등학교 6개 △도로망=도심지를 중심으로 한 순환방사형으로 하며 유성에 인터체인지를 설치하고, 자전거와 보행용 전용도로를 두며 단지 교통체계와 대전시 관통로를 분리 △도심지 개발=특정연구기관 육성법에 의한 공동관리기구가 관장하며 토지구획 정리사업과 입주기관 선정, 대지 배정 등을 담당한다.
정부는 사업 추진을 위해 연말 예산 책정시 1억9천800만원을 연구단지 조성을 위한 1차 연도 예산으로 편성키로 했다. 어떤 사업이건 예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같은 해 5월 30일. 이창석 과학기술처 차관은 이날 국회 경제과학위원회에 출석해 연구학원도시 건설 계획을 보고했다. 이 차관은 과학기술 기반 구축을 위한 제2 연구단지로 인구 5만명이 상주하는 연구학원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처는 같은 해 6월 26일 그동안 대외비로 추진하던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과학기술처는 대전시 서북쪽 8㎞ 지점인 충남 대덕군 유성면과 탄동면 일대 700만평 대지 위에 건설할 연구학원도시는 인구 5만명 내외의 인구를 가진 현대 시범도시로, 1973년 중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 조사 후 종합건설계획을 확정하고 1974년 착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기술처는 서울 홍릉 제1 연구단지에 이어 제2 연구단지인 연구학원도시는 △앞으로 도입기술의 소화와 개량을 통한 신기술을 민간기업에 이전해 기술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기술정보 제공과 기술훈련으로 전략산업 분야 기술인력을 확보하며 △적정 도입기술 선정과 기술도입 분배 등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건설부도 과학기술처의 대덕연구학원도시 발표에 맞춰 26일 연구학원도시 건설 예정지역 일대를 기준 지가 고시 지역으로 지정했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같은 해 7월 27일. 과학기술처는 이날 중앙청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종합과학기술심의회에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추진 계획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심의회는 국가과학기술진흥을 위해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각 부처별 과학기술 관련 업무를 효율적으로 종합 조정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로, 위원장은 국무총리였다. 심의회 위원은 경제기획원 장관과 과학기술처 장관 등 관계부처 장관 13명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서울대 총장,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소장 등 민간위원 3명 등이었다.
심의회는 이날 회의에서 아래와 같이 결정했다. 첫째,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은 과학기술처와 건설부가 협의해 같은 해 12월까지 건설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기본계획에는 입주 기관 사업계획을 상세히 반영한다. 둘째, 대덕학원연구도시 건설은 기본계획에 따라 건설부와 협조해 우선 순위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한다. 셋째, 대덕학원연구도시에 입주할 전략산업연구기관의 차관계획서를 같은해 8월 말까지 경제기획원에 제출한다. 넷째, 과학기술처는 앞으로 대덕학원연구도시에 입주할 연구기관 중 통합할 필요가 있는 기관에 대해 통합 방안을 연구 검토한다.
같은 해 8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2차 추진계획을 보고받았다. 과학기술처는 연구학원도시 입주 대상기관으로 전자통신연구소와 석유화학연구소, 종합기계연구소, 해양개발연구소, 조선연구소 등 5대 주요 연구기관을 선정했다고 보고했다. 국립연구기관으로는 국립표준검사소와 국립중앙수산검사소, 국립지질광물연구소, 중앙전매기술연구소, 농업자재검사소, 국세청기술연구소, 식품연구소, 철도기술연구소, 국립농산물검사소, 전기통신연구소, 국립농산물검사시험소, 보건연구원 등 12개 기관을 입주시키기로 했다. 교육기관은 충남대와 초·중·고교를, 그리고 민간연구기관도 다수 입주시킨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과학기술처는 학원도시 규모는 700만평으로 거주 인구는 5만명이며 이 중 연구기관 연구인은 4000명, 교육자는 1000여명, 서비스 인력 6500명, 대학생 3500명, 가족 3만5000명으로 예상했다. 도시 건설과 관련해 1973년 말까지 기본계획을 확정 짓고 1974년부터 도시 기본시설 설계를 끝내고 공사에 착수키로 했다. 5대 연구기관은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신설하며 12개 국립연구기관은 1981년까지 이전키로 했다. 교육기관 이전과 신설은 1981년까지, 공동 시설은 1976년까지 설치키로 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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