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취소’ 고민 끝에…“음악만 한 위로와 애도가 있을까요”
한쪽에선 국가애도기간 사회적 압박 비판
‘이태원 참사’로 오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중음악 공연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음악과 공연도 애도의 한 방식”이라며 공연 취소를 압박하는 분위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룹 코요태는 5~6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에서 하려던 공연을 내년 1월로 미뤘다. 가수 지소울도 5~6일 서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하려고 했던 공연을 취소했다. 백지영은 5일 전국투어 청주 공연을, 이문세는 4~5일 전국투어 당진 공연을 취소했다. 장민호는 1일로 예정했던 정규 2집 발매를 연기하고 4~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공연을 하지 않기로 했다. 용준형도 음반 발매를 연기한 데 이어 콘서트까지 미뤘다.
외국 가수들의 내한공연도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마이클 볼튼은 8~9일 하려던 8년 만의 내한공연을 내년 1월로 연기했다. 공연 제작사는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가 이 비통한 사고로 가슴 아파하는 이때 공연을 진행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됐다”고 양해를 구했다.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무대를 재현하는 ‘엠제이(MJ) 라이브 마이클 잭슨 트리뷰트 콘서트 코리아 투어’도 서울 등 4개 도시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
그러나 일부 음악인들은 공연 취소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예정된 공연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생각의 여름’(본명 박종현)은 인스타그램에 “이번 주에 하기로 한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며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 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 관에서 예술 관련 행사들(만)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닫는 것을 보고 주어진 연행을 더더욱 예정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며 “하기로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본다.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번 더 생각한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방식이다.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벨로주 망원의 기획공연 ‘내 가수의 애창곡’은 예정대로 3일 열기로 했다. 박정용 벨로주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공지를 통해 “출연하는 음악가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공연의 성격이나 의미를 고려하면서 이 공연이 함께하시는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연은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며, 공연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며 차분하게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이 공연에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들의 노래를 통해서 서로를 위로하고 보살필 수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당장 예정된 공연이 없어도 많은 음악인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재훈은 인스타그램에 “애도의 모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가의 일방적인 공연 취소에 반대한다. 예술은 여러 성격의 힘을 가지고 있다. 공연과 전시를 통해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고양되기도 하지만 슬픔을 공감하고 치유해나가기도 한다”고 적었다. 싱어송라이터 정원영도 인스타그램에 “모든 공연을 다 취소해야 하나요. 음악만 한 위로와 애도가 있을까요”라는 글을 썼다.
앞서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4월 말로 예정됐던 음악 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프’ 주최 쪽이 애도의 마음을 담아 공연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장소를 대여해준 고양시 고양문화재단이 하루 전날 전격 취소를 통보했다. 이에 많은 음악인들과 음악팬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자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움직임이 커진 것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국가를 홍보할 때는 케이팝을 내세우면서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음악을 멈추라고 하는 건, 음악을 놀이나 여흥으로만 여길 뿐 위로·치유·추모의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가뜩이나 팬데믹 기간 공연이 봉쇄되고도 피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음악인들과 공연업계 사람들이 또다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 짚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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