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의 완독] 한국 현대사의 의미있는 교정지

김기철 2022. 11. 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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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석의 <독립운동열전:잊힌 사건을 찾아서>

1920년경 상하이에서 촬영한 김립과 그의 동료들: 앞줄 오른쪽 끝이 비운의 주인공 김립. 시계 방향으로 모스크바 외교의 주역 박진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이자 한인사회당 당수 이동휘, 신원 미상, 뒷줄 모스크바 자금 결산을 책임진 김철수, 역사가 계봉우, 신원 미상. 독립기념관 제공

1.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인물은 검문소를 지키던 박중사(엄태구)였어요. 박중사는 김사복(송강호)의 택시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만 못본 척 통과시켜 줍니다.

‘1980년 광주’ 같은 상황에 던져지면 목숨을 내놓고 싸우지는 못하겠지만 싸우는 사람을 슬쩍 도와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박 중사에게 마음이 갔었죠.

임경석의 <독립운동열전> 1권 ‘잊힌 사건을 찾아서’에 나오는 수많은 독립투사와 배신자, 밀정들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은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행원 전홍섭이었어요.

그는 조선은행의 현금 운송 정보를 독립운동가들에게 흘려 탈취를 돕습니다.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할 용기는 없었지만 자기 위치에서 독립운동을 돕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죠.

2.

일제시대에 블라디보스톡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밀정이 엄인섭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엄인섭은 안중근 의사의 가장 친한 동지였고 두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함께 맹세하기도 했었죠.

놀라운 것은 엄인섭이 밀정이 되는 시점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이 1909년 10월 26일인데 일본의 기밀문서에 따르면 “엄인섭은 1908년 11월경 영사관에 출두하여 첩보자로서 고용해 달라고 청원했다”고 하니 그는 안중근 의사와 교류할 때 이미 변절한 상태였던 것이죠. 그는 이때부터 무려 1922년까지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면서 밀정 노릇을 해왔던 것입니다. 안의사가 알았다면 통탄할 일입니다.

3.

독립운동사에서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백범 김구 선생은 비판받아야할 오류도 여러차례 저질렀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김립 테러 사건이죠. 임시정부에서 함께 일한 독립운동의 동지를 백주대낮에 12발의 총을 쏴서 살해한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더구나 그가 의심했던 자금횡령도 사실이 아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4.

1925년 상하이의 어느 한국인 집에 한 부부가 세들어 살았습니다. 주인집 남편 김성근은 독립운동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존경심마저 갖고 있었죠.

그런데 셋집 부인은 자신의 남편과 주인집 부인이 간통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물론 이 사실을 김성근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성근은 이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 여인은 김성근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성근이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밀정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부인은 임시정부 경무국에 찾아가 주인집 남자를 신고합니다. 신고를 받은 김구는 바로 경무국 요원들과 함께 김성근 집을 습격하지만 김성근은 이미 도주한 뒤였습니다. 임시정부 경무국 내에도 또다른 밀정이 존재했던 것이죠. 김성근은 밀정 사실을 숨기고 해방후 건국훈장까지 받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짙은 그늘입니다.

5.

정의가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한국 현대사는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정의가 승리하지는 못하지만 역사는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교정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죠.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합니다. 이 책이 우리 현대사의 의미있는 교정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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