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편하게 쉬렴, 억울함은 엄마가 풀어줄게”…변호사 아들 못보내는 어머니[이태원 핼러윈 참사]
“억울함은 엄마가 풀어줄게. 너는 하늘나라 가서 하고 싶은 공부 많이 하고 편하게 쉬렴…”
2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 ‘이태원 참사’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A씨(43)의 어머니 B씨(70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당시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만큼, 질서만 바로잡아 줬어도 이런 안타까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B씨는 “아들의 장례 절차를 마치고 마음을 추스른 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에 참사의 책임을 물으러 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B씨에게 있어 아들의 죽음은 의혹 투성이다.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했던 아들이 왜 이태원에 가게 됐는지, 당시 누구와 있었는지 등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아들의 유품인 휴대전화(아이폰) 조차 비밀번호를 해제하지 못했다. 아들이 근무하던 직장과 학교에 부고를 알린 것이 전부였다. A씨의 빈소에는 직장 동료와 동창 10여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1녀 2남의 쌍둥이 중 막내로 태어난 A씨는 가족들에게 있어 집안의 기둥이자 버팀목이었다. 전남대학교 로스쿨을 1기로 졸업한 변호사이자 금융 공기업에 다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이기도 했다. A씨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반에서 1~2등을 다투며 의사를 꿈꾸던 형과 달리 중학교 시절 반에서 꼴찌를 할 정도였고, 고등학교 1~2학년 당시에도 중위권 수준이었다. 어릴적 A씨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교과서보다는 영화와 소설책을 좋아했다.
A씨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고3에 진학할 무렵이다. 갑작스레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는 형을 보며 가족들 앞에서 ‘형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A씨의 성적은 가파르게 올라 서울 명문대 법대에 합격할 정도가 됐다.
B씨는 당시 아들이 원하는 대학교에 못보낸 준 게 가장 후회가 된다고 했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서울의 사립대학교가 아닌 지역의 국립대를 독려했다. A씨의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 일을, 어머니는 작은 분식점을 운영하며 큰 아들의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던 때였다. A씨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전남대 법대에 입학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처럼 투병하는 형을 돌봤다. 스스로 자처해 형에게 ‘골수 이식’도 3차례나 했다.
그러나 A의 노력에도 형은 투병 5년 만에 눈을 감았다. 이후 A씨는 로스쿨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서울로 상경했다. A씨는 결혼도 늦추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살뜰히 챙겼다. 매월 월급날이면 가족들에게 넉넉한 생활비를 보내며 “이제 돈 걱정하지 말고, 돈 보내면 모아두지 말고 쓰세요”란 말을 수시로 건넸다고 한다. A씨의 지원 덕분에 B씨 등 가족들은 최근 생애 처음 아파트로 이사했다.
A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8시26분쯤 B씨에게 안부 전화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날 이뤄진 A씨의 발인식에서 B씨 등 가족은 끝끝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영정 사진을 안고 아들의 이름을 여러차례 외치던 B씨는 “평소 속이라도 좀 썩였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 텐데…”라며 통곡했다.
A씨의 발인을 지켜본 직장 동료와 로스쿨 동기 변호사들은 “평소 성격이 수더분하고 매우 성실한 친구였다”고 그를 기억했다. 운구차에 실린 A씨는 추억이 서린 전남대 캠퍼스를 돈 뒤 영락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B씨는 “이제 걱정 안 하고 살 게 됐는데 아들이 허무하게 떠나버렸다”며 “이제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이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는지 원인을 밝히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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