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직전 112 신고, 다수였고 구체성 있었다면 ‘국가배상’ 책임 인정될 가능성

박용필 기자 2022. 11. 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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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로윈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세계음식문화거리를 1일 경찰이 지키고 있다. 김창길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이태원)사고 당일 18시 34분경부터 현장의 위험성과 급박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사고 예방 및 조치가 미흡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도 같은 날 “사고 1시간 전부터 여러 건의 신고가 있었다. 인파가 많아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며 “오후 9시가 되면서 심각할 정도의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치안유지는 경찰의 책임이지만 재량이기도 하다. 재량권의 범위에서 어떤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법적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그러나 주의나 작위(의식적으로 행한 적극적인 행위) 의무가 발생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고이다. 범죄 신고를 받은 경찰관에게는 신고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전의 다급한 신고들은 ‘범죄 신고’가 아니라 ‘안전우려에 대한 신고’인데, 이 역시 주의의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2일 “범죄신고만큼은 아니더라도, 매우 구체적이고 신뢰성이 있는 신고가 사고 시간과 근접해 다수 접수됐다면 주의의무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주의의무가 인정될 경우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점이 입증되면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2014년 대법원은 오원춘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의 신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경찰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직무집행상의 과실이란 직무를 담당하는 평균인이 갖추어야 할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것”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을 이유로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 이 법 5조는 ‘극도의 혼잡’에 대해 ‘경찰이 경고·피난·억류·위해방지조치 들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문구는 ‘할 수 있다’로 재량을 뜻하는 형식이지만 국가기관의 직무에 관한 법령이니 ‘기속재량(원칙은 의무인데 사안에 따라 재량을 인정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시각이 있다. ‘의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998년 트랙터를 도로에 방치한 경찰관의 행위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명시된 법규를 위반한 게 아니라고 해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은 있다. 대법원은 2012년 ‘위법한 직무수행’에는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행위의무가 정하여져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 뿐 아니라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위반한 경우도 포함된다’는 판례를 제시했다.

경찰관이나 간부 개개인의 형사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경우 주의나 작위 의무를 태만히 하거나 실수로 위반한 정도로는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의도적으로 의무를 방기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대법원은 1983년과 1997년 직무유기죄에 대해 “추상적 성실의무를 게을리하는 일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을 가리킨다”고 밝힌 바 있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경우 업무상의 과실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과실과 치사·치상이라는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와 예측가능성이 별도로 입증돼야 한다. 즉 경찰의 미흡한 조치가 참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미흡한 조치가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나 조직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배상소송과 달리 형사처벌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입증의 정도도 ‘무죄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 처벌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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