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알고리즘은 알고 계신대, 누가 ‘말 잘 듣는’ 라이더인지···

조해람 기자 2022. 11. 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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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등 플랫폼노동자 600명 실태조사
‘불리한 일감’ 거부하면 앱 접속 차단까지
쉬려고 배달 1개 거절했는데 ‘콜 추천’ 전화
서울 중구의 한 거리에서 배달노동자가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음식 배달·대리운전 등 플랫폼의 ‘일감 강제 배정’ 알고리즘이 플랫폼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10명 중 6명은 출·퇴근은 물론 휴게시간도 스스로 정할 수 없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실상 종속된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탓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는 플랫폼 노동자 600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16일부터 9월19일까지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2일 공개했다. 조사 대상자는 플랫폼 노동자 중에서도 알고리즘의 강제할당을 받는 배달라이더(200명), 대리운전기사(200명), 플랫폼택시기사(100명), 가사노동자(100명)로 한정했다. 부업으로 하는 노동자는 제외했다.

‘알고리즘 보스’ 명령 안 따르면 앱 접속도 못 해

조사 결과 응답자 45.2%가 알고리즘이 배정한 일감을 수행하지 않은 뒤 앱 접속을 차단당한 경험이 있었다. 가사노동자가 57.0%로 이 경험이 가장 많았다. 배달라이더가 50.5%, 택시기사가 47.0%, 대리운전기사가 33.0% 순이었다. 접속 차단 기간은 ‘상황에 따라 분 단위나 일 단위로 제한’이 66.4%로 가장 높았다. ‘분 단위’가 33.2%, ‘일 단위’가 0.4%였다. 분 단위로 제한되는 경우 평균 45.0분 동안 접속이 차단됐다.

알고리즘 배정을 수행하지 않았을 때 일정 기간 일감 배정을 제한받았다는 응답은 63.8%에 달했다. 이 중 ‘상황에 따라 분 단위나 일 단위로 제한’이 59.8%, ‘분 단위’가 40.0%, ‘일 단위’가 0.3%였다. 분 단위로 일감 배정 제한이 걸린 경우 평균 약 48.0분 동안 일감을 받지 못했다.

서울의 한 배민커넥트 센터(구 배민라이더스)에서 배달라이더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노동자가 부담스러워하는 일감을 배정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수입 대비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대기시간이 긴 일감, 부당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는 고객 상대, 너무 먼 지역으로 가야 하는 일감 등이다. 알고리즘 강제 배정 일감 중 이 같은 ‘꺼리는 일감’의 비중은 ‘10% 이상 30% 미만’이 45.7%로 가장 높았다. ‘10% 미만’이 23.7%, ‘30% 이상~50% 미만’이 10.2%, ‘70% 이상~90% 미만’이 8.8%로 뒤를 이었다.

이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강제 배정을 수락해야 하는 상황은 과로로 이어졌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2.2시간으로 조사됐다. 임금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39.0시간)보다 13.2시간 길었다.

플랫폼 노동자 10명 중 6명(65.1%)은 업무수행 방식이나 출·퇴근, 휴게시간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었다. 플랫폼업체 지침에 의해 결정된다는 응답이 33.7%였고, 플랫폼의 지침과 지사·지부 등 업장 관리자에 의해 이중통제를 받는다는 응답은 16.7%로 나타났다. 플랫폼 지침이 없더라도 업장 관리자의 통제를 받는다는 응답은 14.7%였다. 노무를 제공하고 받는 금액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응답은 16.7%에 그쳤다. 법상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업체에 종속된 노동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자기 일을 관리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에 대한 ‘알 권리’를 요구했다. 82.7%는 ‘일감 배정 원리와 불이익 기준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불이익 종류와 제한시간 등을 상세히 안내받은 적 있는 응답자는 11.8%에 그쳤다. ‘알고리즘 공개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94.3%에 달했다. 이 중 ‘원칙만 공개’가 57.0%였고 ‘오픈소스 등의 완전 공개’도 37.3%로 적지 않았다.

누가 말 잘 듣는지 안 듣는지···좋은 콜을 안 주신대

알고리즘이 ‘노동자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정황은 실험으로도 입증됐다. 현종화 이륜차안전문화연구소 소장은 지난 8월9일~13일 5일간 8명의 배달라이더가 직접 검증한 ‘알고리즘 일감 배정 수락 유무에 따른 차이’ 실험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배달라이더들은 주문량이 많은 서울 강남과 상대적으로 적은 경기 파주 2곳으로 4명씩 나뉘어 점심·저녁 피크타임(총 8시간) 배달을 수행했다. 지역마다 2명은 알고리즘 배차(배달의민족 배민1·쿠팡이츠)를 따랐고, 2명은 자율 배차로 일했다. 알고리즘 배차를 따르는 조는 초반 2일은 배차를 100% 따른 뒤, 다음 3일은 ‘꺼리는 콜’을 거부해 봤다.

실험 결과 플랫폼들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라이더들을 관리하는 정황이 나타났다. 서울 강남의 배달라이더 A씨(배민1 인공지능 배차 수락 실험군)는 실험 2일차 점심 피크타임 근무를 마치고 오후 3시10분쯤 휴식을 위해 콜을 거부한 뒤 플랫폼으로부터 새 콜을 추천받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 현 소장은 “플랫폼사가 알고리즘 프로그램 뒤에 숨어 배달라이더들의 노동성을 부정하는 도구로 인공지능(AI) 배차를 사용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장기 미배차된 콜에 대해서 콜을 추천드리면서 동시에 전화통화도 하는 시스템이 있다”며 “콜을 압박하거나 하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했다.

알고리즘 배차를 거부한 순간부터 ‘좋은 콜’ 배정이 줄어드는 예도 있었다. A씨가 꺼리는 콜을 거부한 지 이틀째인 실험 4일차에는 서울 압구정 한복판에서 점심 피크타임인데도 약 20분간 콜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공백이 두 차례나 생겼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배차 거절에 따른 패널티는 없으며 평점, 등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며 “배차 1건을 거절한 데 대한 압박이나 휴식을 중단하라는 취지로 배달종사자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알고리즘 배차를 100% 따르면 곧바로 과로에 노출됐다. 자동 배차를 100% 수락한 라이더들은 지역배달대행사 주문을 자율적으로 고른 라이더들보다 주행거리가 평균 25%(30㎞) 늘었다. 이 같은 과로는 라이더들의 과속·교통법규 위반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플랫폼알고리즘 실태와 노동환경 개선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배민과 쿠팡이츠가 어플리케이션(앱)에서 스크린샷을 찍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도 밝혀졌다. 현 소장은 “플랫폼사들이 AI배차시스템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짐작된다”며 “좀 더 정교하고 합리적인 AI배차의 발전을 위해서는 알고리즘을 오픈하고 라이더와 소통하면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일감이 어떤 원리로 배정되고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임금과 수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평점과 등급도 어떻게 매겨지는지에 따라 계정 정지나 일감배정 불이익 등 사실상 징계나 해고의 효과를 갖는다”며 “사실상 취업규칙이나 다름없는 이 같은 알고리즘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기능과 연결해 알고리즘 규제의 토대를 만들고, 알고리즘 설명·검증에 플랫폼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핵심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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