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지도부 경고에 ‘NLL 이남’ 미사일 도발···북한 ‘체제 위기’ 속내엔 ‘핵 고도화’
북한이 2일 사상 처음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한·미 대규모 공중연합훈련(비질런트 스톰)을 빌미로 더 큰 도발 수순을 밟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핵 사용시 체제 종말을 언급한 미국에 대한 강한 불만도 깔려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변칙적 도발 등으로 긴장 수위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날 한반도 동·서쪽으로 미사일 20여발을 발사하며 도발을 강화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은 동해 NLL 이남의 속초 동쪽 공해상에 떨어졌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NLL 이남에 낙하한 건 분단 이후 처음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울릉도 인근과 NLL 이남을 겨냥했다는 건 위협 정도를 대폭 높인 도발행위”라고 했다.
앞서 박정천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전날 밤 조선중앙통신에 담화를 내 도발을 예고했다. 박 부위원장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 등을 겸임하고 있는 북한 최고지도부 일원이다. 지난달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보다 발표 주체를 극도로 격상시켜 경고 메시지를 선명화한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고”라고 해석했다.
박 부위원장 입장문을 보면 이번 도발은 표면적으론 한·미 대규모 공중연합훈련에 대한 반발 차원이다. 박 부위원장은 “1990년대초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할 때 사용한 작전대호인 ‘데저트 스톰’(사막 폭풍) 명칭을 본딴 것으로 놓고보나 철저히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비판했다.
공군력이 취약한 북한은 미 해병대 최신 스텔스전투기 4대를 포함한 한·미 전투기 240여대가 동원되는 이번 훈련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모습이다. 미 전략자산인 핵추진 잠수함도 부산에 입항해있다. 외무성 담화에서 “미국의 핵전쟁 각본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고 비난한 것도 위기감이 고조됐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겨냥한 체제 위협은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이다.
미 국방부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북한이 핵 공격시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체제 붕괴를 경고한 것도 북한 도발 배경으로 작용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를 “헷뜬 망발”이라며 “명백한 것은 5년 만에 부활된 미국과 남조선의 이번 공중연합훈련이 이러한 도발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 부위원장은 앞서 외무성이 요구한 훈련 중단뿐 아니라 “도발적인 망언”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부위원장은 “미국과 남조선이 겁기없이 우리에 대한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은 부과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없이 실행할 것”이라며 “미국과 남조선은 가공할 사건에 직면하고 사상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단지 위협성 경고로 받아들인다면 그것부터가 큰 실수”라고 했다. 이후 곧바로 강도 높은 도발을 전개하며 경고를 현실화한 셈이다.
지난 9월말부터 도발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의 실제 의도는 한·미 연합훈련을 맞대응 명분 삼아 핵무력 고도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공중연합훈련은 예고돼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의 도발은 계획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 애도 국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강도 높은 대남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 힘이 실린다.
박 교수는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절대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한반도 긴장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키고 7차 핵실험으로 방점을 찍은 뒤, 사실상 핵보유국 위상을 갖고 미국과 담판에 나서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관계 개선과 체제 위협 감소를 목표로 미국을 최대한 압박해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변칙적 움직임으로 도발 수위를 높일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 실장은 “사상 첫 NLL 이남 탄도미사일 발사는 NLL이라는 남북 관계의 정치적 쟁점까지 건드리며 의외의 헛점을 찌른 것”이라며 “미사일 급을 높이는 기존의 패턴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전술적 의외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술핵 부대 운용을 과시한 북한이 한·미 훈련에 대응한다며 국지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남북 간 동·서해상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북한 전술핵 사용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압도적 대응이 아닌 비례적 대응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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