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속 핼러윈은 그에게 탈출구”…자유 찾아 한국 온 이란인 유학생의 ‘55일 서울살이’ 안타까운 참변
“이란에서 꾹 참아온 거 한국 와서 다 풀고 싶다고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올 수 있게 도와주지 말 걸 그랬어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란인 유학생 레이하네(24)의 친구들은 그녀를 ‘리얀’이라고 불렀다. 레이하네는 2017부터 2년간 이란 테헤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지난 9월 한양여자대학에 어학연수를 왔다. 레이하네의 친구들은 그의 한국행이 고단했다고 했다. 이상혁씨(40)는 이란의 금융 제재로 돈을 보내지 못하는 레이하네를 위해 등록금 270여만 원을 대신 내줬다. 그는 지난 1일 “왜 도와줬을까. 차라리 안 내줬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이란에서 레이하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마후르(27)는 레이하네가 “한국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며 “한국에 빵집을 차리는 꿈이 있었다”고 했다. 이란에서 온라인 빵집을 운영하던 레이하네는 마후르에게 스승의 날 기념 케이크도 선물해줬다. 마후르는 레이하네가 테헤란에서 이웃 주민이기도 했다며 “가끔 리얀이 집에서 닭강정 같은 한국 음식도 만들어줬다”고 기억했다.
마후르는 “리얀은 케이팝 춤을 좋아하던 친구”라며 “리얀은 홍대에서 당당하게 춤을 추고 영상을 올리는 게 소망이었다. 자유를 누리려고 왔는데 이렇게 희생됐다니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고 울먹였다.
마후르는 3주 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레이하네를 본 게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간고사 끝나면 리얀이 집에서 이란 음식 해주겠다고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상혁씨도 “이란은 지금 여러모로 힘든 상황인데, 핼러윈은 얼마나 탈출구 같았겠어요”라고 했다.
이란 뉴스에서 딸의 이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레이하네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한국에 오기 위해 다른 이란 유가족들과 논의하고 있다. 마후르는 “리얀 아버지가 장한평역 고시원에 꼭 가서 리얀의 마지막 자취를 봐야겠다고 했다”고 했다. 이씨는 “리얀에게 세 동생이 있는데 리얀이 한국에 오자 둘째 동생이 큰 언니방 쓰게 돼서 좋아한다고 했었다”며 남겨진 가족을 걱정했다. 그는 “극구 말렸는데도 리얀의 아버지가 방법을 어떻게든 찾겠다고 하더니 테라 코인으로 등록금 값을 보냈다”며 “어떻게 그걸 받냐. 만나면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다”고 울먹거렸다.
이들은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수많은 국화꽃 사이에 리얀의 사진을 붙였다. 마후르는 레이하네의 사진을 여러 번 붙였다 떼고 국화꽃 한 송이를 조심히 내려 놓으며 몇 분 동안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씨도 슬픔에 얼굴을 구긴 채 한참을 앞에서 머물렀다. 레이하네가 어학연수를 하던 한양여대에는 레이하네의 분향소가 설치됐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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