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한 경찰관이 무슨 잘못” “윗선에선 뭐했나” 내부 반발 확산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과 함께 윤희근 경찰청장이 감찰과 수사를 꺼내들자 일선 경찰들이 "윗선에선 뭘 했느냐"며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2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아직도 출동 경찰관이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경찰임을 인증한 A씨는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가 11건이 들어왔다고 언론에서는 말하는데, 신고를 받은 경찰관 몇 명이 현장에 출동해서 해산해 달라고 말해도 '경찰 코스프레 하냐'며 비웃고 통제는 따르지 않는다"며 "이태원 전역에 이렇게 사람이 밀집해있는데 딱 사고 지점에서만 사고가 날 줄 어느 누가 예상을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A씨는 "만약 경찰 수백, 수천 명이 통제를 하고 사람들을 해산시켰다면 그땐 또 어떤 욕을 먹고 누가 책임을 져야 했겠느냐"며 "애초에 경찰 지휘부에선 왜 경력 배치를 안 했느냐"고 따져물었다. 이어 서울시청이 사전 대비를 충분히 하지 않은 점, 소방 당국이 예방 활동을 하지 않은 점, 언론이 인파가 몰리도록 홍보한 점, 상인회에서 안전 요원을 배치하지 않은 점 등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파출소 직원 몇 명이 해결할 수 있던 일 맞느냐"며 "사전에 지휘부들이 예방했어야 할 일들을 현장 경찰관들 감찰해서 죽이며 꼬리자르고 지휘부들은 책임에서 회피하면 끝인가"라고 반문했다.
전날에도 블라인드에는 경찰 수뇌부와 행정 당국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이태원 파출소 직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B씨는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도 본청의 경력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112 신고는 시간당 수십 건씩 떨어진다. 당일 탄력근무자 포함 30명 남짓 근무하면서 112 신고 뛰어다니며 처리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압사사고를 예상해서 통제하고 있었다면 112신고는 누가 뛰느냐"며 "혹여 강력 사건이라도 발생해서 누군가 죽었다면 왜 가만히 걸어가는 사람들 통제하느라 강력사건 못 막았냐고 비난하시지 않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서 대비는 파출소 소속 직원이 했어야 했느냐. 경찰청, 서울청, 경찰청장은 뭘 했느냐. 광화문 집회에 그렇게 많은 기동대가 필요한가"라며 "일이 터졌으니, 112신고가 있었으니 책임은 일선 경찰관이 져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살달라 손 내밀던 모든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그 기억들이 가시지 않아 괴로워하는 젊은 경찰관들에게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지게 하는 게 최선인가"라며 "아무 대비책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던 서울시장,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및 윗선 본인들 스스로 먼저 감찰받으라"고 직격했다. 다만,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다.
현직 경찰이라고 밝힌 C씨는 '이태원 사고 112대응 못한 이유 설명드립니다'라는 글에서 "사건 당일의 경우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도합 80건의 신고가 있었고, 결국 한 시간에 안에 사건 20건씩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현장 경찰관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통해 사망사고가 날 것을 예견하고, 팀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팀장은 파출소장에게 보고하고 서울청장에게까지 14번의 보고와 결재라는 과정을 거쳐서야 기동대가 파견돼 인원 통제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C씨는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출동 경찰관이 더 조치를 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며, 신고 처리 과정에서 대처가 미흡했다는 청장의 발언은 핵심을 잘못 짚었다"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만성적 경찰 창설 이래 한번도 해소된 적 없는 절대적 인력부족, 경직되고 수직적 조직 문화와 첨탑형 계급구조에 따른 쓸데없이 많은 보고와 결재라인 등 경찰의 오래된 아주 고질적이고,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압사 신고가 아니라 처음엔 골목이 막힌다고 신고하는데 온갖 긴급신고 내팽겨치고 거기 서있겠나" "경찰청장이나 용산 서장, 교통 경비 보안 과장은 뭘 했길래 일선 경찰관들이 112 신고 처리 미흡했다는 말을 하나" "(윤 청장) 기자회견 끝나자마자 용산경찰서 전 직원에 대해 본청 주관 감찰 실시한다는 문자가 온다. 현장 경찰관들은 그날 슬픔에 한 번 죽었고, 오늘 두 번 죽었다" 등 일선 경찰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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