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멈추고 침묵해야 ‘애도’인가요[스경X초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5일째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인재’라 모두가 숙연하게 희생자들을 기리는 가운데, 연예계에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대부분 신작 발표회나 쇼케이스,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됐고, 예정된 공연들도 모두 중단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애도’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라는 소신 발언들도 나오고 있다. 각자 저마다 방식으로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해야한다는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연예계 스타들의 소신 발언들을 모아봤다.
■ “공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어”
싱어송라이터 생각의 여름(박종현)은 애도의 방식에 대해 의미있는 화두를 던졌다. 지난달 31일 그는 “두 공연의 기획자들이 이번 주 공연을 진행할지 연기할지에 대하여 정중히 물어왔다. 고민을 나눈 끝에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며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 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보다. 관에서 예술 관련 행사들(만)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닫는 것을 보고, 주어진 공연을 더더욱 예정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라며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음악작가 배순탁도 생각의 여름이 올린 글을 재게시하며 “언제나 대중 음악이 가장 먼저 금기시되는 나라. 슬플 때 음악으로 위로받는다고 말하지나 말던가. 우리는 마땅히 애도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애도의 방식은 우리 각자 모두 다르다. 다른 게 당연하다. 방식마저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싱어송라이터 정원영도 1일 “모든 공연을 다 취소해야 하나요. 음악만한 위로와 애도가 있을까요”라며 국가 애도 기간 아래 예정된 공연들이 줄취소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가수 장재인은 생각의 여름과 정원영의 글에 직접 호응하는 뜻의 이모티콘 댓글을 달았다.
■ 애도는 하되, 침묵하진 않겠다
슬픔 속에서도 미처 사고에 대비하지 못한 나라의 무능한 시스템을 지적하는 스타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방송인 허지웅은 1일 “라디오를 여는 글을 쓰려고 새벽부터 앉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아직 스스로가 평정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체 무엇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고 쓰더라도 어떤 쓸모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생각했다”며 “주최가 없으면 시민의 자격을 상실하는 세계의 한가운데서. 할 만큼 했고 책임질 게 없다는 말잔치의 홍수 속에서. 정작 내 입과 손 끝에서는 쓸모 있는 말이랄 게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밝혔다.
배우 김기천은 같은 날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뻔뻔한 사람 같지 않은 자들 때문에 밤에 잠이 안 오고 소화가 안 돼 속이 답답해 견디기 힘들다”며 “애도를 강제로 강요하지 말라. 변명과 책임회피만 하는 협잡꾼들에게 큰 벌이 내려지길 바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태원에 사는 가수 김C도 KBS1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전화 인터뷰를 통해 건물 옥상에서 목격한 현상 상황을 전하며 “교통 통제나 폴리스 라인을 못 봤다. 핼러윈 2주 전 이태원 문화축제때는 교통통제가 이뤄져 사람들이 통행하기도 편했고 사건사고도 없었다”면서 “관계당국이 미리 대처를 했다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박명수도 2일 방송된 KBS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토요일까지 애도 기간이다. 기간은 중요치 않다. 우리 마음속에 평생 이 일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며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반복되면 안 된다. 학교에서도 실수하면 혼나지 않나. 한 번 혼나야 할 것 같다”며 정부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그룹 빅마마 신연아는 2일 SNS에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직후 시민단체 동향을 문건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 일부를 올리며 “국가 애도기간이라며 모두의 입은 막아두고는. 애도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기사에는 경찰청이 만든 시민단체 동향 문건에 ‘참사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관저 문제와 연계될 수 있다’는 지적 등이 담겨 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는 3년만에 대면으로 진행된 핼러윈 행사를 앞두고 약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그러던 중 비좁은 골목에서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한데 엉키면서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넘어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총 307명이며, 이 중 사망자 수는 156명(2일 기준)을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오는 5일 자정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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