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0’ 지령에도 안움직인 경찰…‘사각지대’ 지원 안해놓고 현장 탓?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이태원 참사 당시 112 신고에 따른 대응 체계상 최단 시간 내 출동하라는 '코드 0' 지령이 내려졌지만 경찰이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참사 전후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군중관리 사각지대'로, 안전 대응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상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현장 대응 인력의 탓으로만 책임을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이태원 참사'가 있기 약 4시간 전부터 '사고가 발생할 것 같다'는 긴급 신고를 총 11건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1건은 경찰의 112 신고 대응 체계상 최단 시간 내 출동하라는 '코드 0' 지령이, 7건은 우선 출동하라는 '코드1' 지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경찰이 미흡하게 대응하면서 사고 피해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11건의 신고 접수와 관련된 경찰관들을 상대로 당시 상황 대응 경위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전후 경찰의 미흡한 대응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또한 2일 참사 당시 112 신고와 관련해 "대단히 엄정한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태원 파출소 현직 직원이 경찰 내부망에 '윤 청장 발언 때문에 직원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며 '어떤 근거에 따른 발언이냐'고 반박하면서, 현장 대응 부족으로만 책임을 한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당 직원은 핼러윈 축제를 대비해 앞서 기동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고, 파출소 직원 20명으로 역부족인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해산시키는 인원보다 몰려드는 인원이 워낙 많아 일선 파출소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대규모 인원을 앞서 지원받지 못한 이상 현장 대응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요 외신들도 안전 관리 대책 부족 등 당국의 부실한 관리가 참사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인파가 밀집한 상황에 대해 경찰도, 서울시도, 중앙정부도 군중 관리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참사 당일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밀거나 잡아당긴 사람들이 사고를 유발했는지 조사에 나선 경찰에 대해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국의 주요 스포츠 행사 군중 관리 담당자인 이세 머피는 WSJ에 "상당수 군중밀집 사고 사례에서 질서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돕거나 밀집도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며 "경찰이 개인을 조사하고 사고 원인을 이들에게 돌린다면 매우 우려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행사에 대한 안전 관리 매뉴얼이 없었다는 점이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국이 제도의 구멍을 인지하고 메웠다면 이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행정안전부가 세운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에는 순간 최대 관람객이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축제는 주최 측이 관할 지자체, 소방서, 경찰서 등의 의견을 수렴해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매뉴얼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민간 등이 개최하는 지역축제'에 적용되는 것으로,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이번 이태원 핼러윈 행사엔 적용되지 않았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왜 이런 상황까지 갔는지, 원인 규명이 우선인데 누군가 책임을 물 사람을 찾는 모양새는 맞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장에서 기동대를 요청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어느 선에서 어떤 사유로 거절됐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의 가장 큰 직무는 공공의 안전과 질서다. 주최자가 있다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주최자가 지지만, 주최자가 없는 행사여도 매뉴얼이 있고 없고 간에 경찰이 질서 유지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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