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일해도 퇴직금 못받는 가사노동자…헌재 “합리적 차별, 합헌”
가사도우미 등 가사노동자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퇴직급여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사적 공간에서 하는 노동이라는 특성을 고려한 결정이다. 다만 소수의견은 이 조항이 성차별적이고 전통적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청구인 A씨가 퇴직급여법 3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퇴직급여법의 적용 범위를 규정하는 이 조항은 ‘가구 내 고용 활동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A씨는 2014년부터 4년간 한 가정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한 후 고용인을 상대로 퇴직금을 달라고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패소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A씨는 “이 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가사노동 종사자를 차별하고 있다”며 “가사노동은 주로 여성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여성노동자에 대해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32조4항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재 다수의견은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노동’이라는 특수성 등을 들어 이 조항이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수의견은 “가사노동자도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제공하는 근로가 양육이나 요양보호 등 가정이란 사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특수성이 있다”며 “퇴직급여법은 사용자에게 여러 의무를 강제하고 국가가 사용자의 법 준수 여부를 감독하도록 한다. 가구 내 고용 활동에 퇴직급여법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이용자가 여러 의무를 부담하고 국가의 감독을 받게 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다수의견은 가사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게 되면 간병과 돌봄 등으로 불가피하게 가사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이들에게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고도 했다. 퇴직급여법을 전면 적용하기 전에 가사노동자를 이용하는 가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분담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새로 제정된 가사근로자법에 의하면 가사 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퇴직급여법 적용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여성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가사노동자에 대해 퇴직급여법 적용을 제외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해 헌법불합치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육아도우미 중 여성 비율은 98.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재판관은 ‘가사란 당연히 여성이 도맡아 하는 일’이라고 보고 급여를 지급해야 할 공식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던 전통적 고정관념이 이 조항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대 의견은 “(이 조항이) 성차별적 법 제도를 비판 없이 답습해 가사노동자에게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수용하게끔 강제하고, 여전히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화돼 있으며 차별에 취약한 여성의 고용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서 “성별에 의한 차별금지로, 고용에 있어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했다.
이선미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으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보충의견을 달았다. 이 재판관은 “가사노동자들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유로, 퇴직급여법뿐 아니라 최저임금법·고용보험법 등 모든 근로관계 법령 적용 범위에서 가사노동자는 일률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며 “법령별로 구체적으로 검토해 이들의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적 개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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