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잇단 구설에 警 부실대응… 책임론 선긋던 與, 기조 급변
[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발언 논란으로 연달아 구설에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의 초동 대응 부실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야권 중심의 '정부 책임론'에 거리를 뒀던 국민의힘 내 선(先)추모·수습 기조가 급변화하는 모습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정의당에서 이 장관·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사퇴·경질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참사 당일 112 신고 녹취록 공개에 따른 대(對)경찰 고강도 문책을 예고하며 국가애도기간인 5일 이후 당내 사고 조사 특위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윤 청장이 이태원 사고에 대한 경찰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공식 사과했다"며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이 전날(1일) 공개한 이태원 참사 당일 112 신고 녹취록 11건에는 "(사람들이) 계속 밀려오니 압사 당할 것 같다" "빨리 오셔서 인원 통제 좀 해주셔야 할 것 같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해당 신고 4건에 대해서만 현장에 출동했고, 그마저도 신고가 들어온 구역의 인파 해산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위원장은 "사고 발생 4시간 전 이미 현장에서 압사를 우려하면서 경찰 현장 통제를 요청하는 112 신고가 있었다"며 "4번이나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의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충분한 현장 조처가 왜 취해지지 않았는지 그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애도기간이 끝나는 즉시 여야와 정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태원 사고 조사 특위를 구성할 것"이라며 "별도로 애도기간 직후 당내 특위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추모) 기간이 지나면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 추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31일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는 정 위원장의 발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같은 기조 변화는 신고 녹취록 공개에 따른 경찰의 미흡한 조처는 물론, 정부 핵심 인사들의 잇단 언행 논란에 싸늘해진 민심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우려할 정도의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었다" "경찰·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해 안전·재난업무 총괄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면피성 발언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한 총리는 전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는가"라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정부의 무한 책임'이라는 취지로 답한 뒤 동시통역 기기에 문제가 생기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라며 웃어 '말장난' 논란을 자초했다.
한 총리를 비롯해 이 장관·윤 청장은 각각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이후 유감을 표했지만, 야권은 이를 고리로 맹공에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총리를 겨냥해 "경악할 만한 장면"이라며 "사태 수습에 총력을 다해야 할 총리가 외신기자 간담회를 하면서 농담을 했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1단계 조치로 이 장관·윤 청장을 즉각 파면하고 축소·은폐 의혹을 모두 포함해 사법조치,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긴급대표단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장관과 윤 청장을 파면하고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 최고 수장으로서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했다. 이은주 원내대표는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며 여야 협조를 촉구했다.
당 일각에서도 경질론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기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윤 청장은 즉시 경질하고 사고 수습 후 이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112시 신고 녹취록을 보면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본인 스스로도 미흡했다고 인정했다"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정책 참고자료'로 위장된 정치 문건을 만든 사실이다. 사실상 사찰로 볼 수도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즉시 경질하지 않으면 공직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자신들이 맡은 본연의 임무보다 정치적 대응을 먼저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국가의 불행"이라고 강조했다.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본인들의 거취에 대해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사퇴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전에 대비가 없었다, 법률에서 요구한 직무수행이 전혀 없었는데 그게 왜 없었나, 이 부분이 진상규명의 핵심인데 그 책임자들이 진상규명하는 상황이 벌어지다보니 변명, 회피하고 심지어 일선 경찰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까지 보인다"며 "(사퇴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당 고위관계자는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국무총리든 정치인이든 언행 하나 하나에 조심해야 하고, 내 의도와 상관없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책임의 범위, 누가 얼마나 져야 할지는 사고 원인에 대해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에서 적절히 판단해서 국민들 눈높이에 맞는, 상응한 조치가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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