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자랑 ③] 부산일보 산복빨래방이 우리에게 남긴 것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는' 부산일보 산복빨래방의 최초 기획부터 향후 숙제까지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미디어오늘은 기존 취재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등 전국에 있는 여러 매체의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코너를 시리즈로 실습니다. 일명 '전국언론자랑'은 전국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취재하는 매체에 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다. - 편집자 주
“호천마을을 잊지마세요. 우리도 잊지 않을게요.” 산복빨래방을 찾은 어르신들이 기자들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보였다.
미디어오늘이 부산일보 산복빨래방을 찾은 지난달 26일 오전 9시30분. 문을 열고 준비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어르신 5명이 빨래방을 찾았다. “느그 또 뭣이 먹고 싶노 말해라.” 간식 거리를 챙겨 온 어르신들이 기자들을 반갑게 껴안는다. 기자, PD들과 어르신들이 서로를 보는 얼굴에는 웃음과 눈물이 모두 비쳤다.
기자, PD들이 산복빨래방을 떠나기까지 4일이 남은 날. 산복도로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빨래를 해준다는 취지를 좋게 본 유한양행이 제공한 1000회 분의 세탁 세제를 어르신들께 나눠드리는 날이기도 하다. 기자, PD들은 마을주민 유일한 단체 소통방인 '호천마을 에어로빅 단체 카카오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빨래방 의자에 나란히 앉은 어르신들께 이상배 기자가 세제 사용법을 설명한다. 어르신들이 기자의 말을 듣는 사이 또다른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빨래방을 찾았다. 원래 빨래방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50명 넘는 어르신들이 빨래방을 찾았다.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손자같고 아들같고. 정말로 보내기가 너무 아쉽고, 여기 와가지고 정말 우리 나이든 사람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죽었던 동네가 활기차고. 이런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더 와 주십사 하는 부탁하고 싶고, 정말 그동안 수고 많았고, 정말 잘하셨고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내가 대책이 없습니다…”
“우리 호천마을 잊어버리지 말고 저도 우리 기자님들 피디님들 안 잊고...거기 가서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한번씩 가끔 가다가 우리 호천마을 와주시고 건강하게 계세요. 앞으로 자주 자주 만납시다. 건강하세요.”
카메라 앞에 앉아 기자, PD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조경자(77) 어르신 눈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야 울지마라! 나 눈물나는 거 못본다.” 눈물에 잠시 말을 멈추기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어르신들을 보는 기자, PD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어르신들은 한 번만 안아보자며, 기자, PD들을 안고 손등에 입을 맞춘다. 기자, PD들은 '또 오겠다'며 어르신들과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한다.
“우리 엄마들이 전부 처음에 톡에 31일까지 한다고 했을 때 눈물이 나서 다들 막 울었다니까. 마을에서 운영을 해도. 사람한테 정이 든거라. 기자들이 하는 거랑 천지 차이지. 정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그러려고 오는 건데. 빨래하러 오는 게 아닌데…” 한 어르신이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들의 빨래를 해드리고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는'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은 올해 5월9일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에 있는 호천마을에 문을 열었다. 디지털미디어부 2030팀 김준용, 이상배 기자와 김보경, 이재화 PD가 함께 기획을 시작했다. “부산 언론에서 그동안 예산투입, 도시재생 등 산복도로에 대한 보도는 많이 내보냈지만, '그래서 지역 주민들 이야기는 뭔데. 주민들이 원하는 게 뭔데'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김준용 기자의 말이다.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기자들은 부산 근현대사의 질곡을 담은 산복도로 중턱에 빨래방을 차렸다. “역사책에 한 줄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운 좋게도 이 문을 열고 당시 문장 안에 있던 분들이 튀어나오셨다.” (김준용 기자)
기자, PD들은 6개월의 시간동안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월요일에 어르신이 오시면 이야기를 좀 듣고, 다음주에 좀 더 듣고, '오늘은 얘기하기 싫다'하면 넘어가고. 그렇게 기자들은 조금씩 어르신들에게 다가갔다. “인터뷰를 하기까지 사전취재가 2~3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내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어느 취재원을 이렇게 깊이 알고있을까 생각했다. 그 과정이, 빨래방을 한 이유이지 않나 생각한다.” 김준용 기자의 말이다.
기자, PD들은 5월부터 호천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총 20개의 기사에 매주 담아냈다. 어르신들과 함께한 야외 에어로빅, 함께 떠난 봄소풍과 고둥 캐기, 영화 관람기부터 50년 전 부산 삼화고무 공장에서 일한 어르신에게 들은 당시 여공들의 이야기, 가족이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산길 수 킬로미터를 오르내렸던 그때 그 시절의 생생한 이야기까지, 모두 기사에 담았다. 글로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와 재밌는 에피소드는 총 37편의 유튜브 영상에 담고, 못다 올린 사진은 '산복빨래방'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업로드했다.
기획을 준비하며 빼곡이 적어갔던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활동' 목록은 절반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지'는 어르신들과의 대화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집으로'였다”는 어르신의 이야기에 같이 영화도 보고, '사진' 이야기에 '영정 사진'만을 떠올리던 어르신들과 함께 화사한 배경과 밝은 포즈로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어르신들이 기자를 부르는 호칭에는 점점 '기자'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손자, 손녀, 아들, 딸'만이 남았다.
10월31일 산복빨래방은 문을 닫았다. 빨래방은 호천마을 주민협의회에서 맡아 운영할 예정이다. 기획을 시작한 처음부터 주민협의회와 협의한 사안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도시재생 시설로 만든 것들이 하나도 제대로 유지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해왔는데, 빨래방을 떠나는 순간 문이 닫히고 시설이 사라져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상배 기자의 말이다. 빨래방은 최소한의 정비 기간을 거친 후 11월 중순 다시 연다.
오전 10시20분. 어르신들이 잠시 빠져나간 사이 기자, PD들이 서둘러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하는 모습이 꽤 능숙하고 분주하다. 어르신의 표현에 따르면 기자들은 '호천마을에 시끌벅적한 일들을 자꾸 만들었다.' 이상배 기자는 “어머니들이 저희한테 '잘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의 의미는 빨래보다는 서로 얼굴도 보고 정을 나눈 일에 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가 빨래방에 2000만원 투자했대' 너머에는 더 많은 주민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부산일보가 빨래방에 2000만 원을 투자했다.' 부산일보 산복빨래방 기자, PD들이 외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2000만 원은 지역 언론이 한 기획을 위해 투자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기에, 언론을 포함한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인테리어 비용을 포함해 세제, 섬유유연제, 전기세, 수도요금 모두 부산일보가 부담했다. “기성 지역 언론사에서 2000만원을 투자했다는 거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그 안에서 무슨 얘기가 이어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딱히 큰 관심이 없었다. 후순위였다. 우리가 6개월 동안 하면서 넘어야 될 우리의 숙제였다.” 김준용 기자의 말이다.
4명이라는 꽤 많은 인력과, 2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기자들에게는 감사한 결정임과 동시에 부담이었다. 회사에서 돈을 투자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고, 기업의 후원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기업 손은 절대 타지 말자'는 기자들의 확고한 원칙에 따라 회사에서 투자받은 돈이었다. '우리는 돈을 2000만 원이나 받았고 결과물을 내놔야한다'는 생각은 기자, PD들을 늘 따라다니는 마음의 짐이었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투자를 했기 때문에 유튜브 조회수 같은 성과를 원할 거고, 박수, 칭찬, 외부에서 이렇게 저희를 알고 싶어 하는 것들도 성과지만 사실 회사에서 원하는 성과는 미디어 전쟁 시대에 그게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기 때문에 조금 힘든 점이 있었다. 그래도 여러 군데에서 저희를 조명하니까 의미가 있는 거구나 하면서 조회수 얘기는 조금 많이 잠잠해졌다.” 김준용 기자의 말이다.
김보경 PD는 “산복빨래방도 처음에는 이전 영상들처럼 '조회수 터트려보자' 하고 많이 노력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감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면서 서두르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힐링'이라는 기획 컨셉 밑에는 기자, PD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다른 현장 취재도 가고, 다른 디지털 기획도 맡아 운영하면서도 기자, PD들은 매일 빨래방에 출근했다. 빨래방 2층에는 PD들이 짬이 날 때마다 바로 편집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했다. 유튜브 채널 '산복빨래방' 구독자는 4000명을 넘었고, 직접 빨래방을 찾는 독자도 생겼다. 한 독자는 “강원도 양양에서 산복빨래방 때문에 부산 여행을 왔다”며 빨래방을 찾기도 했다.
'지역밀착취재', 언론 안팎에서 지역언론에게 늘 요구하는 고유명사같은 단어
주변에서는 기자, PD들에게 '부산일보의 다음 디지털 기획이 기대된다'는 말을 하곤한다. '팝업 스토어처럼 이런 류의 기획을 부산일보의 시그니처 기획처럼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내년에는 뭘 해야할까'는 2030팀에게도 가장 큰 고민이다.
하지만 2030팀에게는 '지역'이라는 넘어야 할 큰 벽이 있다. 김준용 기자는 “14F나 비디오머그 같은 유튜브 채널을 보면, 기존 이슈를 빨리빨리 쫓아가는 형식이 많다. 사실 지역에서도 이러한 형식의 유튜브를 하자고 하는 분이 이었다. '그럼 누가 보겠어요'가 저의 대답이었다. 여기서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유튜브의 소비층은 전국민을 넘어 전세계다. 하지만 모든 언론이 유튜브에 뛰어든 현 생태계에서, 지역언론이 '모두의' 이야기를 하면 관심 갖지 않는다. '지역언론으로서' 지역에만 집중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이야기만 하는 콘텐츠를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부산'이라는 일종의 출입처에서 전국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소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유튜브 같은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지역 언론과 중앙 언론의 간극이 유독 심한 것 같다. 유튜브에서 저희는 부산 얘기만 할 수는 없고, 부산 얘기만 하면 조회수는 안 나온다. 그 부분이 고민이다.” (김준용 기자)
이는 부산일보 기자들이 '산복빨래방'이라는 기획을 시작한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지역언론이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새롭고 특이한 것'을 해야만 한다는 설명이다. 부산일보도 처음부터 '산복빨래방' 기획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 비용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빨래방을 왜 차리냐'라고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김준용 기자는 “이런 것을 해야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을 다들 이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역밀착취재'는 언론 안팎에서 지역언론에게 늘 요구하는 고유명사같은 단어다. “똑같은 주제를 다뤄도, '그건 지역만의 이야기는 아니잖아'라는 말이 나온다. '부산'이라는 단어를 항상 문장 속에 하나 넣어야하는 것이다. 부산의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인 것은 맞다. 그런데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얘기를 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어서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지역 언론이 남들이 안하는 걸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김준용 기자의 말이다.
'결과물'에서 벗어난 산복빨래방과 주민들의 마지막 이야기
산복빨래방 기자, PD들이 가장 고민한 것은 '산복빨래방의 마지막'이다. '마지막'은 기자, PD들에게 큰 의미다. 김준용 기자는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언론에는 유독 결론이 있어야 한다는 문법이 있다. 가령, 보도의 영향을 받아 실제 생활 시설이 지어지고, 우리가 지적해서 실질적인 개선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우리가 빨래방을 한다고 해서 뭔가가 명징하게 바뀌진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왜 빨래를 해줘? 어르신들하고 저렇게 하루종일 그냥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야?'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질문 개수를 점점 늘려가고 싶다. 답은 모르겠고, 우리는 그냥 한다.” 해가 진 오후 6시30분. 산복빨래방의 문을 닫으며 기자, PD들이 말했다.
31일 기자, PD들은 산복빨래방을 마을에 넘기고 부산일보로 돌아갔다. 하지만 산복빨래방이 마을 주민들과 나눈 정, 우리에게 전해준 이야기, 그리고 언론에 남긴 고민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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