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애 디에잇과 화사를 부모님이 대신 만난다?'안녕, 자네'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2022. 11. 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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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사진출처=방송영상 화면 캡처

내겐 혼자만 간직하는 기념일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팬레터라는 걸 작성한 날이다. 편지 받는 사람의 손에 이 편지가 곱게 전달은 될 것인지 하는 걱정마저 내 몫이었던 '생애 처음으로 쓴 팬레터'는 여전히 내 책장 한구석에 있지만, 부치지 못한 이 편지는 볼 때마다 20년은 훌쩍 지난 순수했던 시절의 내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수업이 이어지는 동안 연습장을 몇 번이고 찢어가며 다듬었던 내용을 편지지에 옮긴, 그럼에도 펜으로 쓰는 글씨가 어색했던 탓에 필체는 영 엉망인, 반나절의 떨림이 '첫 팬레터'라는 이름 아래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팬들 사이에는 입덕 계기(좋아하게 된 이유)를 묻는 것만큼이나 입덕 날짜(팬이 됐음을 인지하고 기념하는 날)를 묻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내 어린 시절 첫 팬질의 입덕 날짜는 그렇게 정해졌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색다른 인터뷰 콘텐츠를 접했다. JTBC의 디지털 뉴스 정보 미디어 채널 '헤이뉴스'(HeyNews)의 '안녕, 자네'다. '내 팬의 가족과 만났다'라는 소개 글처럼 누군가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이의 가족과 그런 마음을 받는 상대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다. 주로 팬질(누군가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이 자녀의 팬질 상대를 만나 자녀가 쓴 팬레터를 직접 읽어주는 것. 때때로 아내의 팬질을 지켜보는 남편이 출연하기도 한다.

여전히 누군가의 팬인 입장에서 접한 인터뷰 콘셉트는 솔직히 민망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팬레터는 연애편지와 담기는 마음의 시작점부터 다르지만, 어쩌면 연애편지 이상의 내용이 담긴다. 적어도 내가 쓴 팬레터는 어디서도 쉽게 꺼내놓지 못해 매 순간 커져 버린 마음들을 누구에게도 쉽게 쓰지 못할 표현으로 녹여 글자로 치환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편지가 가족(그것도 부모님)의 입을 통해 대리 전달된다니, 상상만으로도 '어우, 어떡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진제공='안녕, 자네' 방송 영상화면 캡처

하지만 이렇게 '안녕, 자네'에 대해 쓰고 있다는 건 결국 내 짐작이 상상에서 비롯된 오해였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빠져버린 덕후(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한계 없는 표현력만 견뎌낸다면 말이다. (별을 따다 박은 듯 빛나는 두 눈, 요정 같은 얼굴 등등)

사방이 하얀 스튜디오에 놓인 두 개의 의자, 생각보다 가깝게 놓인 이 의자에는 부모님과 최애가 마주 앉는다. 스타는 가까운 거리에서 팬의 가족으로부터 팬의 마음을 전달받고, 더불어 그 팬을 바라보는 가족의 진솔한 마음도 듣는다. 팬레터를 읽는 가족은 이 과정이 덕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시간이다.

가장 최근 공개된 '안녕, 자네'에는 세븐틴 디에잇을 좋아하는 두 딸의 아버지와 디에잇의 만남이 담겼다. 이 아버지는 딸들이 디에잇에게 쓴 두툼한 편지를 받아들고 "아빠에게도 이렇게 써준 적 없다"는 말과 함께 서운한 마음을 안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편지에는 두 딸이 디에잇에게 빠지게 된 이유부터 가까이 있지만 아버지는 몰랐던 딸들의 깊은 고민, 그 상황에서 디에잇이 어떤 힘을 줬는지 등등이 세세하게 적혔다. 이를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며 아버지는 그동안 몰랐던 딸의 고민과 아픔에 미안함을, 그런 딸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준 디에잇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아버지는 짧은 인터뷰를 통해 긴 시간 동안 누군가를 좋아하는 딸의 마음을 공감한다. 또 디에잇은 팬의 아버지를 통해 듣는 팬레터 내용에 중간중간 자신의 이야기를 더해 아버지의 마음에도 한 발자국 다가간다. 두꺼운 내용 가득 담긴 두 딸의 진솔한 마음은 아버지와 딸들, 두 딸의 최애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의 거리까지 좁힌다.

사진출처='안녕, 자네' 방송 영상 화면 캡처

지난해 첫 선을 보인 '안녕, 자네'는 어느덧 50번 스타와 팬의 가족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 사이 함께한 스타들은 간접적으로(하지만 매우 가깝게) 전달받은 팬의 마음에 힘을 얻고, 감동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함께한 팬의 가족들은 촬영이 끝난 후 입을 모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나도 팬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안녕, 자네'는 '팬질'을 주제로 소통의 기회가 없었던 가족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콘텐츠였던 거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예쁘다는데, '누군가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교복을 입을 때에 연예인을 좋아하는 건 사회적으로 이해받을 수 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누군가의 팬'이라 밝히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여기 있다.

그럼에도 팬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20년도 더 전에 팬레터를 썼던 내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 '팬질'이 대체로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면, 트로트 가수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이젠 내 어머니 아버지 세대도 함께하는 문화로 파이를 넓혔다는 것. 다만 여전히 팬 문화를 바라보는 오해의 시선에 '안녕, 자네'가 따뜻함 한 스푼을 더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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