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강경해진 북한, '핵무력 시위' 벌이나
기사내용 요약
군서열 1위 박정천 비질런트 스톰' 비난하며 핵무력 시사
담화 9시간 만에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 이남 SRBM 도발
긴장 높이며 7차 핵실험 명분 쌓아 "미국과 담판 시도 목적"
[서울=뉴시스] 김지은 기자 =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한 북한의 무력 도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북한이 핵 무력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북한군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을 겨냥해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한미훈련이 시작되자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던 북한이 군부 1인자까지 동원하는 등 반발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다.
실제 박정천의 담화 발표 후 약 9시간 만에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이 이뤄졌다. 북한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상 북방한계선(NLL) 이남 우리 영해 근처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위협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2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8시 51분께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3발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한 SRBM 중 1발은 NLL 이남 26㎞ 지점 공해상에 탄착됐다. 강원도 속초 동쪽 57㎞, 울릉도 서북쪽 167㎞ 거리 해상이다.
미사일 방향이 울릉도 쪽이어서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 및 탄도탄 경보 레이더 등과 연계된 중앙민방위경보통제센터에서 울릉군에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합참은 지역 주민에게 주변 지하 대피시설로 대피할 것을 당부했다.
북한은 해안포와 방사포를 NLL 이남으로 쏜 적은 있으나 탄도미사일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우리 영해를 향해 미사일을 쏜 것은 중대한 위협으로 9 ·19 군사합의 전면 위반이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은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한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4일까지 F-35A, F-35B 스텔스 전투기 등 240여 대를 동원해 대규모 공중훈련을 벌인다.
미국 해병대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 F-35B가 한국 땅에 내린 것은 처음으로 이와 별도로 핵 추진 잠수함 키웨스트함(SSN-722)도 부산항에 입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군 서열 1위인 박정천은 '비질런트 스톰'을 겨냥 "미국과 남조선(남한)이 우리에 대한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 공화국의 '특수한 수단'들은 부과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전략적 사명을 실행할 '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은 핵무력을 시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력정책 법령을 채택하며 '핵무력의 사명'을 언급한 바 있다.
북한 외무성도 전날 대변인 담화에서 "남조선에서 대규모 야외기동 훈련인 '호국'연습이 진행된데 이어 불과 며칠 만에 또다시 비질런트 스톰이 시작됐다"며 "미국이 계속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가해오는 경우 보다 강화된 다음 단계 조치들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잇달아 감행한 것을 7차 핵실험으로 가려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핵능력에 대한 자신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보다 심각한 위협을 부과하는 것이어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전까지 핵실험이 핵 기술 고도화에 목적이 있었다면, 7차 핵실험은 한반도 유사시 등 실제 쓸 수 있는 전술핵 실전 배치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협상에 복귀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이번에도 긴장 고조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의 협상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궁극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전략적 노림수라는 평가다.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면 핵 개발 때문에 가해지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된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은 미국 정부의 부인에도 미국 조야에서 핵실험 이후 대북관여 방안으로 군축협상론이 거듭 제기되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미국의소리(VOA)방송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미 '코로나 봉쇄'에 놓여있어 (추가) 제재가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군축협상을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불거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전략도발 이후 북한의 협상 복귀 여부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는 가운데 실질적 위협 감소를 위한 미국의 군축협상 모색 여부 등이 향후 한반도 정세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국제 핵정책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북한과 그들이 원하는 어떤 곳에서든,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며 "두 국가가 마주 앉아 대화하고자 한다면 군축은 언제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북한의 도발은) 9월 25일부터 보여준 저위력(전술핵) 미사일의 실전 능력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도발해도 한미가 대응할 수 없다는 확신에 따른 행동"이라며 "인도-파키스탄 사례에서 나타나는 '안정-불안정 역설'이 한반도에서 재현되고 있다. 핵을 가진 국가가 더욱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취해 불안정이 증대되는 현상이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절대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중국 20차 당 대회 초반에도 도발했고, 이태원 참사로 비통에 빠진 한국 여론도 고려하지 않는다"며 "한반도 긴장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킨 후 7차 핵실험으로 방점을 찍고,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의 위상을 갖고 미국과 담판에 나서려 한다"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 "훈련의 내용과 수위에 따라 북한의 전격적인, 그리고 과거의 패턴과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맞대응 대형 도발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비상 상황"이라며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타협에 나설 의지가 전혀 없는 치킨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한미가 예견된 충돌을 잘 억제하고 막아낼 수 있을지 비상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kje13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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