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한국, 원격의료 후진국 전락
코로나19 펜데믹을 계기로 전 세계의 의료행태가 변화하고 있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의료비 부담이 큰 나라에서 주로 도입했던 비대면 진료 즉, 원격진료가 보편화되고 있다.
2020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 국가에서 32개 국가가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다. 원격의료 범위와 조건은 각각 다르지만 80% 정도 국가가 법규에 의해, 혹은 특정 법규가 없어도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OECD 국가중 한국, 칠레, 체코 등 6개 국가만 원격의료 사각지대다.
해외에서는 진단·처방 등 치료 중심에서 예방·건강관리 등 헬스케어 중심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애플의 스마트워치가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아마존 클라우드가 병원에 흩어진 예약·통원·진료 기록을 데이터 플랫폼 형태로 관리하는 식이다.
원격의료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발생 이전 500억 달러(한화 약 66조 원)에서 2025년에는 2780억 달러(약 367조 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유럽 등 서양권 국가 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들의 원격의료 상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 미국...코로나 이후 초진도 원격의료 가능
미국은 1990년대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초고속 통신망의 파생사업의 하나로 원격의료가 성장했다. 1993년 미국원격의료협회(ATA)가 설립되면서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 뿐만 아니라 주(洲) 정부별로 원격의료의 규정 및 내용이 다르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원격의료가 본격 도입된 것은 1997년 연방원격진료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이며, 2000년 사회보장법이 개정되면서 원격의료 범위가 늘어나게 됐다.
미국은 전체 병원의 50%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원격의료 활용이 38배나 증가했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발발 이전부터 '원격의료동등법(Telehealth Parity Law)'을 시행해 민간 보험 영역에서 질병에 대한 '원격의료'와 '외래 진료'에 동일한 보험 수가를 적용하도록 유도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에는 진료 제한을 더욱 완화해 초진에도 화상진료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메일, 문자로 하는 의료상담에도 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전 0.1%에 그쳤던 미국 내 원격의료 비중은 2020년 4월 기준 14%까지 높아졌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미국 전체 환자 기준으로 11% 정도에 불과했던 원격의료 서비스 사용률이 코로나 이후에는 46%로 증가했고, 의사와 의료기관의 원격의료 활용 횟수 또한 50~175배 늘었다.
미국 내 원격의료 시장의 규모는 2019년 175억3000만 달러(약 20조 8168억원)에서 연평균 38.2%로 성장해 2025년 1223억 달러(약 173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보건의료재정청(CMS)은 2022년 7월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뤄진 일부 원격진료 서비스의 의료보험 적용 조치를 2023년까지 연장하고 향후 영구적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2002년 설립된 '텔라닥(Teladoc)'이 1만여 명의 의료진을 활용해 결막염과 같은 가벼운 질환부터 암과 같은 중증질환자 후속 치료, 정신과 상담 등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텔라닥 회원 수는 총 7500만명이며, 이들 중 유료서비스 이용자도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5300만 명에 달한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Alexa)'가 탑재된 스마트스피커에 "의사와 상담하고 싶다"고 말하면 텔라닥 콜센터에 연결되는 방식으로 협업도 진행중이다.
또 미국에서는 우버 개발자들이 왕진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의사가 환자를 방문해서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에서 이미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 프랑스...4년간 시범 시업 후 2018년부터 원격의료 시행
프랑스는 의사인력 부족, 예약의 어려움 등으로 의료서비스 이용이 불편한 국가 중 하나였다.
프랑스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와 유사한 단일 보험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최근에 원격진료가 제도화됐다. 2009년 7월 입법된 '환자, 보건, 지역관련 병원개혁법안'을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 2010년에는 원격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원격상담 ▲원격자문 ▲원격모니터링 ▲원격의료지원 ▲원격통제 등 다섯 종류로 정의했다.
2014년부터 실시한 4년간 시범사업을 완료후 2018년 법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으며, 점차 그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원격진료는 대면 외래 진료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프랑스는 원격의료 합법화와 동시에 의료보험을 일반진료와 동일하게 70%까지 적용하고 있다.
코로나가 확산되자 프랑스 정부는 원격의료 서비스 규제를 완화했다. 그 내용은 ▲담당 주치의 결정 없이도 원격 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담당 의료인이 아닌 처음 만나는 의료인에게 원격 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접근에 따른 불균형을 대처하기 위하여 코로나 의심환자, 임산부, 백색구역 거주자(휴대전화나 인터넷 네트워크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 만성병 환자 또는 70세 이상의 환자에게는 전화 의료 상담이 일시적으로 허용된다 등이다.
프랑스에서는 2020년 3월 15일 봉쇄령을 시작으로 전화 의료상담이 비약적 발전을 보였다. 지난해 프랑스 내 원격진료 건수는 1900만건으로 집계됐다.
현재 프랑스는 20개 이상의 원격의료 진료 플랫폼이 운영 중이다. 2013년 병원 예약 플랫폼으로 시작해 2019년부터 본격적인 원격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닥터립(Doctolib)은 프랑스와 독일 지역 의료진 7만5000여 명과 헬스케어 관계자를 중심으로 원격진료 인프라를 구축했고, 기업가치는 11억 달러 이상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이다. 의사 회원 수는 2020년 4월 기준으로 3만명을 넘었다.
■독일...2015년 e헬스법 이후 의료 디지털화 본격 추진
독일은 2015년 이전까지 의약품법상 비대면 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2015년 e헬스법이 통과되면서 의료의 디지털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부터 비대면 의료금지를 전제로 하던 법과 규정을 정비했다.
이후 헬스케어 관련 앱(App)을 통한 의료의 디지털화를 추진했고, 2020년 1월 디지털 헬스케어법을 신설해 관련 앱에 대해 3개월 만에 허가를 내주고 1년간 수가를 보장해줬다. 현재 독일에서는 우울증, 비만 관리, 불면증, 고혈압 등 다양한 질병군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 영국...원격의료 비중 코로나 이전 1%에서 폭발적 증가
코로나 이전 NHS(National Health Services, 국가보건의료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연간 3억4000만 건의 진료 중 원격진료 비중은 1%에 불과했으나 코로나 이후 Docly, Push Doctor 등 원격의료 서비스 전문기업을 통한 원격진료 건수가 주간 단위로 2배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중국...안방에서 미국 의료진에게 진료 가능
중국은 1999년 원격의료 관련 정책을 세웠으며, 2009년 의료인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자유화했다. 2013년 국무원에서 원격의료 기술 발전 계획을 발표했고, 2014년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2018년 원격의료 발전방향 제시, 2019년 의약품 온라인 판매 허용, 2021년 국가 장기발전 전략에 원격의료 산업 육성 포함 등의 조치를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규제를 꾸준히 완화하고 육성 정책을 펴고 있다. 2015년에는 중국 환자와 미국 의료진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기도 했다.
중국은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주요 IT기업 등이 앞다퉈 의료시장에 진출해 있다. 중국 내 병원, 의사, 환자와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인터넷 의료시장'은 2009년 기준 2억 위안(389억원)에 불과했으나, 2011~2014년 연평균 120% 이상 초고속으로 성장해 2016년에는 223억 위안(3조 8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중국의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21년 346억9000만 위안(약 6조7570억원)으로 의사-환자 원격진료와 의약품 배송이후 6년만에 8배이상 켜졌다. 또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2022년 중국 인터넷 병원 이용자는 4억27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 일본... 20년 간 점차적 완화해 건강보험도 적용
일본은 20년에 걸쳐 원격의료 규제를 점차적으로 완화했다. 1997년 낙도와 산간벽지 주민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해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2011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 지역을 확대했고, 2015년 8월 원격의료 서비스를 전면 허용했다. 2016년 5월부터는 일본우정그룹 산하 택배업체인 일본우편에서 의사 처방약 등 전문의약품 배달도 시작했다. 2018년에는 원격진료를 건강보험에 적용, 2019년 12월 라인헬스케어 주도로 원격진료사업이 활발히 시행중이다.
특히 일본은 2021년 4월부터 특례로 초진 환자의 온라인 진료까지 허용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지난해 3월 기준 일본 전역에서 1만여 곳이 넘는 의료기관이 원격의료를 시행하고 있고, 수도인 도쿄에는 1700곳 이상이 있다.
■ 한국...코로나19로 한시적 허용하자 플랫폼 기업 진출 활발
한국은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논의와 시범사업만 30여년간 있었을 뿐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다가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감염병 예방법 개정으로 전화상담과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원격의료가 허용되자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진출이 활발히 이어졌다.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100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한 닥터나우는 1년 만에 누적 사용자 90만명을 넘겼고, 엠디스퀘어, 솔닥, 메디버디, 올라케어 등 후발 주자들도 월간 사용자 5만~20만 명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일부 플랫폼 업체들은 '원격의료산업협의회'를 만들고 '원격진료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은 닥터나우다. 닥터나우는 국내 최초의 비대면 진료 및 처방약 배송 서비스 앱으로 260여 곳의 병원과 제휴해 내과/가정의학과/소아청소년과/피부과 등 12개 과목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및 처방약 배달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닥터나우는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 새한창투, 해시드, 크릿벤처스 등으로부터 100억 원 규모의 Series A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메디히어는 2020년 9월 미국에서 무제한 원격진료 및 처방 멤버십을 출시했으며. 국내에서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후 한국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한국 기업, 규제 덜한 해외로 눈 돌려
한국 비대면 플랫폼 진료 기업은 그동안 의료법상의 규제로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해외시장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을 진행해 왔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소니 의료전문 플랫폼 M3의 합작회사인 '라인헬스케어'는 2019년 12월 일본에서 원격의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모바일 메신저 리인 플랫폼을 활용해 내과·소아과·산부인과·정형외과·피부과 전문의와 상담이 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 대응 차원에서 일본 전국민 대상 원격의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네오팩트는 뇌졸증 등으로 인한 손 재활훈련시 사용 가능한 디지털 재활기기 라파엘스미트글러브 개발한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원격의료 금지로 인해 환자가 집에서 해당 기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반면, 해외 30개국에 진출해 약 40만명의 가정용 의료기기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인성정보는 혈압계 등 80여개 의료기기로부터 측정한 생체정보를 수집해 의료진과 공유하는 원격의료 시스템인 하이케어 허브를 개발했다. 미국 보훈처에 하이케어 허브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사업은 활발하지만 국내 원격의료 시장은 규제로 막혀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디히어는 2018년 설립한 국내 최초 원격 화상 진료 서비스 회사로 미국내 한인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메디히어 플랫폼을 통해 미국내 한인들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5분 내로 한국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전송받을 수 있다.
KT는 2022년 4월 하노이의과대학과 만성질환 환자들에 대한 공동연구 및 원격의료 시범 서비스 2022년 연내 출시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또 5G 헬스케어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화상 및 음성통화, 문자채팅, AR드로잉 기능 등을 기반으로 실시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는 의료 특화 영상통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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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기자 (kgfox11@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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